[서민위 서태안지회 박승민 총장]
같은 시간 미국의 군사정보 기업 팔란티어의 지배구조 총수인 피터 틸은 유수하다는 미국의 대학을 입학하면 누구나 “길을 잃는다" 며 진짜 엘리트 육성할 대학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대학의 ‘목적 상실’을 지적한 것으로서 한국의 대학을 대비할 시 전통조차 취약한 구조적 문제는 더 심각하여 애초에 ‘엘리트 양성 대학’은 꿈도 꾸지 못하는 나라인 것은 명백하다.한국의 교수라는 타이틀은 장식품으로서 산파의 자격을 갖추지 못했는 바 대학 진학과 동시 본성에 내제된 자유의지를 죽이고, 지성을 표류하게 만든다는 철학자의 냉철한 비판이다. 학문이 수단으로 전락한 시대에, 새로운 지적 나침반의 필요성이 절실하기에 개탄의 심정으로 현실을 논박한다.1. 소크라테스의 산파술과 ‘앎의 전제’소크라테스가 강조한 것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정의를 알지 못하면 정의로울 수 없고, 용기를 알지 못하면 용감할 수 없다."는 ‘앎(ἐπιστήμη, epistēmē)’의 전제했다. .그는 ‘앎’을 단순한 정보나 주입식 지식이 아니라, 행동과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인식의 출발점으로 보았다. 즉, 정의롭고 용감한 행위는 ‘정의’와 ‘용기’에 대한 자기 사유와 깨달음이 전제되어야 가능하다고 했다. 오늘날의 대학은 이러한 근본적 ‘앎의 훈련’을 등한시한 채, 이미 정답이 정해진 문제를 효율적으로 푸는 기술만 가르치고 있다.
그 결과, ‘용감한 지성’, ‘정의로운 실천가’는 사라지고, 시험에 강한 기능자만 양산되고 있는 것이 현실에 직면했다.2. 테아이테토스와의 대화 — 사유의 공간이 사라졌다소크라테스와 테아이테토스의 대화는 “지식이란 무엇인가?"라는 가장 근본적 질문에서 출발한다.이는 단순히 정의를 정의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젊은 지성에게 스스로 사유하게 만들고, 무지를 자각하게 만드는 철저한 산파술의 장면이다.그러나 오늘날의 대학은 이런 대화를 위한 ‘공백’을 허락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질문보다 정답을 외우고, 토론보다 취업 스펙을 쌓으며, 무지를 자각하기보다 ‘아는 척’ 하는 법만 가르킨다.이것이 바로 피터 틸이 지적한 “대학에 들어가는 순간 길을 잃는다"는 철학적 회의가 사라졌다고 지적한다. 지성의 본질인 사유와 자각이순응과 기술로 대체된 현실을 개탄한 것.
3. “세상에 정답은 없고 공짜는 없다" — 대학의 존재 이유에 대한 근본적 질문누구라도 이 단순한 진리를 깨우친다면, “세상에 정답은 없고 공짜는 없다."는 사실을 실감한다면, 오늘날의 대학이 과연 필요할까? 라는 질문은 단순한 회의가 아니라, 대학 제도 자체의 정당성에 대한 근본적이고 철학적인 성찰로 이어진다.
현재의 대학은 정답을 가르치고, 공짜(혹은 제도적 안전망)를 제공하는 공간으로 인식되지만, 원래의 대학은 ‘정답이 없음’을 자각하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는 공간이였다. 그 기능이 사라진 오늘날 남아 있는 것은 포장된 학위와 자격증뿐이다.4. 결론 — 소크라테스와 테아이테토스의 대화가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오늘날의 교육이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소크라테스가 테아이테토스에게 던졌던 질문들이 대학 강의실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서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그는 말했다. “정의를 알지 못하고 정의로울 수 없으며, 용기를 알지 못하고 용감할 수 없다." 고, 2025년 홍콩의 청년들이 침묵하는 원인과같은 계절을 맞이할 이 잔혹한 시대에 설령 소크라테스의 회의적 질문이 다시 살아나 존재 이유를 새롭게 묻고자 한들 대한민국 지성의 방향이 곳추 세워질지는! 필자의 견해로서는 암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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