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뉴스=이남열 기자수첩]지난 2016년 사드 배치 공방으로 미중 극단 대립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중국 왕이 외교부장이 사드체계의 한국배치는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칼춤’ 이라면서 '한국은 美 꼭두각시'라는 식으로 비난한 바 있다.
경북 성주에 배치될 사드(THAAD)를 앞둔 한국을 겨냥해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될 수 있다면서 '미국의 칼춤에 놀아나지 말라'는 경고였다.
금번 15일 중국 산둥성에 위치한 태안시는 교류협력이라는 명분으로 충남 태안군을 방문했다. 이날 가세로 군수는 인민복 착용한 상태에서 행사를 진행했다. 이와 관련 '인조 14년 발발한 병자호란 당시 삼전도의 굴욕이 연상된다'는 군민의 비난이 쇄도한다.
이날 가세로 군수는 보도자료 역시 전년도 앵무새 발언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군수는 이 자리를 빌어 ’중국 태안시와 적극적인 교류를 통해 태안군이 서해안의 중심이자 세계로 뻗어 나가는 도시로 우뚝 설 수 있도록 노력한다‘ 는 입장을 냈다. 지난해 2023.8월 태안시 리랸상 시장 방문시에도 ’중국 태안시와 적극적인 교류를 통해 태안군이 서해안 중심이자 세계로 뻗어나가는 도시로 우뚝 설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라고 했다. 주어는 사라지고 술어만 되뇌인 이들의 교류협력은 속빈 강정이 아니냐는 질문도 빠지지 않았다. 토씨도 다르지 않은 보도자료는 포퓰리즘이 명백했다.
말만 무성하고 결과없는 악평도 회자된다. 중국의 태안시와 한국의 태안군과의 만남, 그렇다면 이들이 꿈꾸는 동상이몽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태안군 공보실의 말장난 어뷰징이라는 설도 있다. 군민의 반응은 냉냉하다. 집안(관내)살림도 못하면서 남집(중국)살림까지 넘보냐!는 볼맨 소리도 나온다.
더욱이 가세로 군수의 인민복 착용은 국민정서와 정면으로 상충된다. 중국이 어떤 나라인가? 선조 25년 발발된 임진왜란 7년 전쟁으로 인육까지 먹었다는 식인 논쟁이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 무지한 외교술로 유명세를 탄 친명배금 정책을 앞세운 인조는 병자호란을 유발해 삼전도의 치욕까지 당했다. 굴종적인 관계에서 맺은 인조의 조약으로 자국민 수 십만명이 인질로 끌여가 모진 고초를 겪었던 역사가 아직도 살아 숨쉰다.
이를 망각한 가세로 군수의 인민복 착용에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는 합리적인 이유다.
6.25전쟁은 어떠했는가? 백두산을 코앞에 둔 1950.10.월 7차에 걸친 중공군 개입으로 70여년간 세계 유일한 분단국으로 전락했으며 오늘날 대만에 이어 제3차 대전 발발지로 한반도가 지목되고 있는 현실이다.
더욱이 이번 11월 치러질 美 대선 결과에 따라 남북갈등은 더욱 심화될 조짐도 진단된다. 이런 국가적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가세로 군수의 인민복 착용 태안시 영접 행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언급하며 탈민족주의(Post-nationalism)를 내세운 성일종 의원'과는 달리 '반국민주의자로(Anti-nationalism)' 국가 자체를 부정하는 국제주의자로 기록될 전망이다.
이에 더하여 태안군 해역에는 중국 어선들이 집단으로 영해를 침범해 마구잡이 수산물을 남획하고 있어 자국 어민 어획량 감소가 불을 보듯 예측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의 인민복까지 착용한 상태로 만면에 미소를 띄운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될 사태로 지목된다.
한편 정치인이란 복장 및 화술 등 신호로 삼아 자신의 내세우는 정책의 방향성을 의미한다. 정치를 메세지라고 했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가세로 군수의 인민복 착용과는 달리 2015년 왕이 외교부장을 만난 윤병세 외교부장, 2017년 이해찬 대표와의 회담 등 연예인의 경우를 제외하면 공인의 인민복 착용거부는 정례로 알려졌다. 순간 인기주의에 발목이 잡혀 불가불(不可不) 관계에서 추락한 자도 부지기수다.
아울러 가 군수는 인민복 착용과 함께 이날 3시 경 구내 방송을 통해 공직자 동원령을 내린 점도 상당한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모택동의 문화대혁명 당시 제사해(除四害)운동처럼 획일적인 전제주의(專制主義)자로 비판 받을 빌미를 제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역사학 전문가는 '의식의 차이가 분명한 각 객체에게 획정적인 세계관을 주입하는 방식은 제국주의 발상에서 기원한다'라는 평가다. 가세로 군수의 동원령은 사대주의도 배제할 수 없다는 군민의 여론이다.
다시 왕이 외교부장으로 돌아가 그가 인용했던 '초한지 홍문의 연회' '항장무검 의제패공‘이란 고사를 돌아본다. 당시 그가 인용한 범주에는 중국 미국만 존재했다. 이 발언을 면밀히 살펴보면, 중국의 외교 정책이 여실히 녹아있다. 그들은 '한국에 대해 미국의 꼭두각시'라는 의식이 팽배하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무언가 변한 것 같지만 그들도 우리도 변하지 않았다. 16세기 선조 27년 임진왜란도 그랬고 인조 14년 병자호란도 그랬다. 이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라는 명구를 참작할 시 이날 중국 인민복을 착용한 군수 가세로는 과연 무엇이 그리도 즐거웠는지 본지가 공개한 왕이 부장의 엄숙한 표정을 꼽씹어 볼 필요성이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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