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뉴스=이남열기획취재]지난 1일 前 진태구 군수는 "국민의힘 서•태안 지역구 성일종 의원이 추진한 『기업도시 특별법』국제학교 설립 지원 등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태안군에 큰 경사’라면서 '전남 해남군의 경우 군수가 직접 나서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별도의 환영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축제 분위기였으나 태안군은 시민단체들이 자발적으로 답사 현수막을 게첩한 환영행사조차 단 하룻만에 제거한 사건을 빗대면서 '물은 배를 띄울 수도 배를 뒤집을 수 있다'라는 '수가재주 역가복주' 공자가어 경구를 인용해 민의를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진 전 군수의 이번 기고문은 지난 5년간 가세로 군정농단을 성토했던 군민의 입장에서는 혹시 동조하고 있나,라는 오해를 불러왔으나 실상 금도(襟度)를 지키고자 침묵했던 사실이 확인되는 순간이였다.
그러면서 당적이 다르다고 해서 ‘환영해야 할 치적에 찬물을 끼얹는 것은 몽니(심술)를 부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태안군 행정운영 양태를 지목해 "지역구 국회의원 및 도지사를 패싱하고 정부 소관 부처와 도청을 패싱하는 (편향된)행정으로는 군 발전을 기대할 수 없으며 그로 인해 애궂은 군민이 피해를 본다"라고 일갈했다.
반면 진 전 군수의 특별기고 이후 7일 뒤 태안군 도시교통과 이호철 과장은 지역신문을 통해 기고문을 내면서 ‘前 진태구 군수에게 묻습니다’ 라며 ‘불법현수막 철거가 과연 사과를 하여야 하는 행위인가!라고 물었다. 마치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나무라듯 反 경어를 써가며 그간 실천하지 못했던 '법과 원칙'을 내세웠다.
그러면서 ‘저의 생각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면서 "현 군수가 호출해 현수막을 왜 철거하게 되었는가? 물으셔서 '불법 현수막 민원이 많아 제거하게 되었다라는 경위를 설명했다"고 서술한다. 이 과장의 기고문의 요지는 '가세로 군수가 현수막 철거 지시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해명하였으나 군민은 엎드려 절받는 작태라고 꼬집었다.
반면 이 과장의 경위 해명과는 달리 같은 날 09시 가세로 군수는 300여 명의 공직자가 모인 월례조회에서 ’지역의 한 어른이 떨어져 나갔다’라며 (떨어져 나간 어른은 누구?) 알 수 없는 모호한 발언과 함께 前 진 군수의 자제인 한서대 진 모 교수를 공개석상으로 소환해 10여 분간 비난했다. 이 같은 간접 정황으로 보아 현수막 제거에 나선 후 호출과 유사한 시간대에 동시다발로 발생된 셈이다.
이어 월례회의를 마친 이튿날(2일) 가 군수로부터 뜬금없이 소환된 진 교수는 ‘자신이 소환될 이유가 없다’면서 분노를 표출한 바 있다. 이후 6일 밤낮이 흘러 7일 경 이 과장의 기고문은 '가뜩이나 차가운 冷골 분위기에 드라이아이스(dry ice)를 들이 붓는 격'이였으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어처구니 없는 형국'이였으니 사람의 어리석음이 어찌 이리 깊은 것인가!라는 비판이 본지를 통해 쇄도했다.
더욱이 이호철 과장의 기고문 보도와 같은 날 前 김세호 군수는 지역신문사 특별기고를 통해 다산 정약용 선생의 목민심서 ‘은졸(隱卒) 임소(任所)에서의 운명’ 시문에서 ‘치인기굉 위인소송(治聲旣轟 爲人所誦)’ 다섯번째 절(節) 만을 인용해 가 군수를 비판한다. 공교롭게 한날 한시 하나의 사건에 각기 다른 의견이 보도된 관계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그림책보듯 알 수 있다'라는 군민의 질타 또한 따가웠다.
김세호 전 군수는 다산의 해관육조 5절 중 마지막 절만 인용했다. 남은 4절은 도저히 인용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하였는지 본지는 알 수 없으나 총5절의 해석만을 긴히 전하고자 한다.
시제 '은졸(隱卒)' 임소에서의 운명(관원에서 죽은 신하의 운명과 유언에 대하여 임금의 칭송을 뜻함)
『임소(任所)에서 죽어 맑은 덕행이 더욱 강력하며 아전과 백성이 슬퍼하고 상여를 붙잡고 호곡하며 오래되어도 잊지 못하는 것은 어진 목민관의 최후다. 오랜 병으로 누워 있게되면 마땅히 거처를 옮겨야 하며 정당(政黨)에서 운명하여 다른 사람이 싫어하게 되어서는 안된다.
상사(喪事 초상)에 소용되는 쌀은 이미 나라에서 주는 것이 있으니 백성이 부의하는 돈을 또 받아 무엇하랴, 유언으로 못하도록 명령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백성을 잘 다스렸다는 명성이 널리 퍼져 언제나 특이한 소문이 있으면 사람들은 그를 칭송한다 』
간략 풀이하면 '당시 목민관이였던 한 선비는 죽음을 예견하고 유언'을 남긴다. 그의 유지(遺旨)는 ‘나라에서 주는 쌀이 있으니 백성으로부터 부의금을 받지 말라‘는 것이였다. 이를 특이하게 여긴 임금이 칭송에 나서자 다산은 시제를 정해 목민심서에 실었다.
마지막 절(絶)만을 인용한 김 전 군수는 ‘다산이 한없이 선을 추구한 것이 혹여 독선으로 흐르지 않았는지를 반성했다’라고 소개하며 선(善)만을 추구하는 것조차 독선이라 할진데 현 군수는 어떠하신가?라는 자성의 문제를 제기한다.
이어 ‘現 가 군수 행정운영은 군민으로부터 소통부재와 불신 및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면서 '2016년 전 한상기 군수를 향해 ‘현란한 행정기교를 부리지 말라’고 했던 기고문은 어떤 의미에서 그토록 비판했는가"라는 뜻과 유사한 춘추 안영의 이도삼살사(二桃殺三士) 고사성어 유래를 전한다.
그 뒤를 이어 12일 경 박선의 의원은 가세로 군수의 월례회의 발언을 빗대 '전 진 군수의 자녀를 소환해 10여 분간 비분강개(悲憤慷慨)한 현장을 선명하게 서술하며 이 과장의 기고문 보도기사는 가 군수의 차도살인(借刀殺人)으로 의심했다.
어느 한 사물의 판단 내지 결정에 대해 자의적 해석은 전면 부정해야 한다. 설령 감각적 경험측이 풍부한 사람이라 해도 이는 생존의 기교를 습득했다고 지적한 플라톤은 테아이테토스(Theaetetus) 통해 지식의 본질에 대해 논한다. 그가 언급한 지식이란 '설명이 함축된 참된 믿음을 의미하며 반면 설명이 함축되지 않은 참된 믿음은 지식의 범위 밖에 있다'고 했다. 같은 참된 믿음이겠으나 '오류를 참되다'고 믿는 우(愚)를 범하지 말고 無知의知를 설파한다.
그렇다면 설명을 함축하지 못해 소통부재에 처해 차도살인으로 의심받고 있는 가세로 군수는 6만 군민으로부터 “현란한 행정기교를 능가하는 양태가 드러났다 할 수 있으며 이처럼 간특(奸慝)한 비난을 받는 막다른 지경에서 과연 관직에 연연할 명분이 있겠는가?‘라는 성토는 끊임없이 제기될 것으로 예측된다.
등록
등록
댓글 더 보기
댓글 새로고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