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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칼럼] 개명학교 천안 실상

[천안=김형태기자]

광복절에 즈음하여 일제 36년 치졸한 일제만 비난하지 말고 역사의 치부를 과감히 드러내고 교훈을 얻으려는 역사의식이 필요하다. 이는 우리 시대의 사명이다.

천안읍내 중엄니(중암리, 안서동)에서 산 민족작가 이기영 선생 작품 대하소설 두만강은 천안을 배경으로 하여 1903년 천안개명학교 실상을 보여 주고 있다.

일제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일방적으로 승리하고 미ㆍ영의 묵인을 받아 조선을 마음대로 장악하고 요리할 수 있게 되었다. 놈들은 정부 각 부에다 일본인 고문관을 초빙하게 하였다. 국내치안은 한국경찰을 젖혀 놓고 전면적으로 일본군사령관이 지휘하는 일본 헌병의 손아귀에 조선민에 대한 생살여탈권을 넘겨주었다. 이러한 정세는 지방으로 내려 갈수록 더욱 왜놈들이 세력을 부리게 하였다. 이 고을 사람들이 학교에 대하여 열심을 보인 것은 이와 같은 외래 세력에 대한 반발이었는지도 모른다.

조선나라가 왜 망했는지 아냐! 인재를 배양하지 않을뿐더러 인재를 등용하지도 않고 무능한 양반들이 정권을 떡 자루 쥐 듯 붙들고만 있다가 망한거야.

“아니 그럼 우리 조선은 어느 편이 이기든지 독립을 하기가 어렵지 않겠나?" “인제 학교를 세워가지고 자각을 시켜서 불은 발등에 떨어 졌는데 원" 자네는 창창한 소리도 하네. “그럼 자네는 무엇을 하려나?" 아무것도 않고 세상만 한탄하며 남의 비방만 하려는가?

대관절 학교는 세울 수 있겠는가? 옛날에는 양반 글방에 상놈의 자식은 들어갈 생각도 못하였다. 개명학교 설립운동은 학교에 대한 인식을 달리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학교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들의 자녀를 입학시키기를 꺼려하였다. 지금 시대는 옛날과 달라졌다. 그전처럼 서당에서 한문만 읽어서는 안 된다. 우리 조선 사람도 분명한 사람이 되려면 서양 사람들과 같이 신학문을 학교에서 배워야 한다.“

학교에서는 국어, 산술, 체조, 무용, 도화, 지리, 역사, 창가, 박물, 이과 등의 모든 신학문을 가르치기 때문에 분명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그리고 학교에서는 신분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다 배우게 한다는 것을 설명하였다. 평생 처음 듣는 말이었다. 이런 일은 진작부터 있어야 할 것이 아니었던가?

서양 각국에서는 벌써 몇 백 년 전부터 학교가 생겼다는데 우리 조선은 왜 그렇게 못하였는가 하는 생각은 그들에게 책임을 묻고 싶다. 과연 그들은 왜 좀 더 일찍이 이런 일을 못했던가? 촌사람들은 학교를 다녀야만 앞으로 희망이 있을 것 같이 생각이 되었다. 그들은 생전 처음 체조를 배우는 게 한편으로 호기심이 나는 동시에 또 한편으로는 수줍어서 부끄러운 생각이 나기도 하였다. 더욱 그것은 머리가 큰 애들과 상투쟁이들이 그러하였다.

자, 여기 불과 20여명이 섰는데 어떤 사람은 상투를 하고 망건을 쓰고 포망을 쓰고 아이들은 머리를 땋고 댕기도 모두 각각이란 말야. 그런데 만일 머리를 깎는다면 모두 똑 같이 될 수 있거든! 그는 이렇게 부르짖었다.

우리나라가 개명 발달하여 반상을 타파하고 자유 평등의 세상이 되어서 백성들은 제각기 생업에 종사하고 관리들은 백성을 잘 다스려 올바른 정사를 해 나간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나 같은 사람은 그런 희망이 있었기에 학교를 세우는데 발 벗고 나섰더니 아 인제는 다 틀렸다. 그러나 나라가 멸망하더라도 백성은 죽지 말아야 한다. 나라는 백성이 근본이다. 백성은 죽지 않으면 나라는 또 찾을 수 있는 거야. 백성까지 죽으면 그 나라(민족)은 영원히 멸망하고 만다. 이 해 신학기부터 읍내 사립개명학교는 폐지되고 소위 신 교육령에 의한 공립보통학교가 신설되었다. 이것은 순전한 왜놈들의 초사였다. 놈들은 교육을 혁신한다는 미명하에 사립학교를 폐지하는 한편 교육기관을 자기 수중에 잡아넣고 감독관으로 왜놈 교장을 두어 노예 교육을 강제하였다.

국가는 망했어도 백성은 죽지 않고 살아 오늘의 자랑스러운 국가를 이루었다. 백년을 내다 본 미래 교육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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