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김형태기자]
송구영신(送舊迎新)이란 어제가 가고 오늘이 다시 온 것을 말한 것이 아니다. 창조된 한 시대가 낡아지고 부패했을 때 허물고 새것으로 창조하게 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지난 16일 충남 아산시 소재의 대한불교 법상종 동심사를 방문했다.
이 곳은 석가모니를 향한 신앙이 아닌 미륵존불을 숭배하는 종파로서 그 구분이 되는 사전적 내용과 더불어 동심사의 주지이신 도국스님의 인터뷰 내용으로 살펴보았다.
1.사전적 의미.
최초로 불교를 세운 고대 인도(지금의 네팔) 사람으로, 성(姓)은 고타마(Gautama)이고 이름은 싯다르타(Siddhārtha)이다. 석가모니란 석가족(釋迦族)에서 나온 성자(聖者)라는 뜻이다. 불타(佛陀, Buddha : 깨달은 사람이란 뜻), 여래(如來), 세존(世尊), 사주(師主) 등의 존호(尊號)가 있다. 왕족(王族)의 태자(太子)로 출생하여 결혼하고 아들까지 있었지만, 인생문제에 깊이 괴로워하다가, 29세에 출가하여 수행(修行)하였다. 35세 때 크게 깨달음을 얻고(大悟成道), 각지에서 교화(敎化)를 실시하였으며, 80세 때 입적(入寂)하였다. (철학사전, 2009, 중원문화)
미륵(彌勒). 매리려야(梅哩麗耶)를 그릇 일러 미륵이라 하니, 이 매리려야는 남을 불쌍히 여긴다는 자씨(慈氏)라 하는 뜻임.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成佛)하리라는 수기(授記)를 받아, 도솔천(兜率天)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그 하늘에서 천인들을 교화하며, 석존(釋尊) 입멸 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사바세계(娑婆世系)에 출현한다는 보살(菩薩). (한국고전용어사전, 2001.3.3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2.도국스님(동심사 주지) 인터뷰.
대한불교에는 조계종, 원불교, 법상종 등 여러 종파가 있다.
충남 아산시 영인면에 위치한 ‘동심사’는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곳으로 대한불교 법상종에 속해 있는 곳이다.
도국스님은 “종파마다 특색이 있는데 법상종을 살펴보면 ‘석가모니’께서 열반할 당시 먼 미래에 다시오실 부처님을 예언했고 그 이름이 ‘미륵존’이다. 이는 예언을 전한 ‘석가모니’와는 다른 존재로서 다시오실 때 세상의 모든 중생을 구제하러 오신다"고 이념에 대해 설명했다.
3.다른 종교에도 예언이 있는가.
기독교에서도 불교의 미륵존불처럼 예수님의 재림을 전하고 있다. 기독교의 경서인 성경에 기록된 바 마태복음 23장과 요한복음 5장의 말씀은 예수님 초림 때의 사건이며, 이는 에스겔 37장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을 말씀한 것이고, 마태복음 24장의 말씀은 예수님 재림 때 이루어질 말씀이므로 예언이라고 말한다.
천지의 창조와 재창조의 순리를 성경이 말한 하나님의 6천 년 역사에서 살펴봤다.
1. 창조, 2. 언약, 3. 부패(배도), 4. 새 목자, 5. 심판, 6. 구원, 7. 재창조, 8. 새 언약이었다. 역학(易學)에서는 이(재창조의) 시기를 우주 일주 해 곧 송구영신이라 하였고, 이 때가 1984년[甲子年]이라 하였다. 이는 시작과 끝이라, 우주를 한 바퀴 돌면 본 자리에 오게 되는 것이다. 이 본자리가 시작이요 끝이다. 송구영신이란 처음 시작한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육십갑자(六十甲子)가 100번 돌아오면 6천 년이 된다.
아담 때 시작한 천지 창조가 계시록 21장에서 재창조가 되었다(계 21:6 참고). 6천년 만에 있게 되는 송구영신 호시절이다. 하나님의 책 성경 66권 안에는 6천 년 간의 족보와 있었던 것들이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다.
성경에 기록된 바 “아담 때로부터 시대마다 부패한 한 시대가 끝나고, 새 시대가 있었고 새 목자가 있었다. 그러나 계시록이 성취되는 주 재림의 시대는 그 이전 시대와는 다르다. 이는 우주적 시작과 끝의 때이며, 다시 시작하는 우주적 출발로서 완전한 새 창조의 때이며, 이 때는 미혹하는 마귀를 무저갱에 잡아 가두는 때이므로, 이 이전의 때와 다른 것이다. 이 같은 새 시대는 6천 년 역사 중 처음 있는 일이며, 하나님의 씨로 난 가족의 세계로서 영원한 천국 세계이다. 이 천국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평화의 세계이다.
4.성경에는 있고 불경에는 없는 것.
기독교 경전의 기록은 예언의 때, 나타날 징조, 있어질 일(사건)들, 그리고 그 결과를 기록하고 있으나 안타깝게도 미륵존불의 존재와 내용을 전하는 불경에는 세세한 것을 설명하지는 못하고 있다.
5.동심사의 유래와 역사
동심사는 역사적 고찰이 없이는 그 유래도 알 수 없으며, 동심사가 왜 천년고찰로 불리는지 설명할 수 없다.
이 곳은 고려 말 원종 원년(1260)에 충렬왕이 태자로 책봉되고, 3개월 후 태자비를 맞이 한 때로부터 살펴봐야 한다.
당시 그는 비운의 권력투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타의로 인해 제국대장공주와 결혼을 했다. 그로인해 왕비가 후궁으로 격하되어 정화궁주로 책봉되었고 급기야 한을 품고 충렬왕 2년에는 제국대장공주를 저주하게 된다. 이 일로 인해 충렬왕 3년에 제국대장공주가 낳은 왕자가 세자로 책봉되고 정화궁이 낳은 왕자 강양공은 위태로운 신세가 되었다.
강양공은 이 시기에 동심사에 유배되어 4년간 고난과 역경의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런 역사적인 사건으로 인해 고려의 전용사찰이 되었고 규모가 커지기도 했다. 하지만 조선왕조 때 시행된 숭유억불정책으로 인해 축소 되었다가 최근 재건한 것이 지금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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