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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의 독립운동가 김수남, 이두열, 고석주, 윌리엄 린튼 선생

[충북타임뉴스=조은희] 국가보훈처(처장 황기철)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군산 3·5만세운동의 주역들인 김수남·이두열·고석주·윌리엄 린튼 선생을 '2022년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의 만세운동의 물결은 독립선언서와 함께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3월 5일 군산 옥구에서 시작된 독립만세의 함성은 3월과 4월 내내 전라북도 곳곳에서 울려퍼졌다.


김수남 선생은 군산에서 태어나 힘든 노동 일에 종사했다. 당시 선생은 노동자 및 학생들과 다시 한번 만세운동을 일으킬 준비를 하였다. 그러나 일본인 교장과 교사들이 학생들을 엄하게 감시하고 속박하여 만세운동을 준비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고, 선생은 이런 상황과 식민지 교육 등 학생들을 억압하는 방식에 대해 크게 분노하였다.


선생은 항일의식의 표출로써, 동료 이남률과 군산공립보통학교를 불태우기 위한 계획을 논의하였고, 3월 23일 밤에 학교를 방화하는 데 성공했다. 방화 이후에 일제 경찰에 붙잡힌 선생은 1919년 5월 24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방화죄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아 복역하였다.


함경남도 영흥 출신인 이두열 선생은 영명학교 교사, 전북 옥구 출신인 고석주는 구암교회 부속 여학교 교사로, 두 사람은 교사 동료들과 함께 3월 6일 군산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펼치기로 결의했다.


만세운동 계획은 거사를 하루 앞두고 일제에 발각되었고, 교사와 친구들이 잡혀가는 모습을 본 학생들은 예수병원 사무원, 교회 신자들과 함께 남은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뿌리면서 만세운동을 시작했다.


이두열 선생은 1919년 4월 30일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이라는 죄목으로 징역 3년을, 고석주 선생도 같은 재판에서 같은 죄목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교육 선교사로 한국에 온 윌리엄 린튼 선생은 1919년 군산 3·5만세운동 당시 이들의 준비를 묵인하고 은밀히 지원했다. 이후 안식년을 맞아 미국으로 돌아간 선생은 애틀란타에서 열린 남장로교 평신도 대회에 참석하여 일제의 잔학한 식민통치와 한국인들의 저항을 생생하게 증언하며 지속적으로 한국 독립의 필요성과 지원을 주장하였다.


정부는 선생들의 공훈을 기려 김수남 선생에게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이두열 선생과 고석주 선생에게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윌리엄 린튼 선생에게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추서하였다.

조은희 기자 조은희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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