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타임뉴스]
65세 이상이면 회원이 될 수 있는 여주군 여주읍 상리에 위치한 여주노인복지관은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일상적인 곳이다. 노인복지관에 수영을 하러 왔다가 복지관의 투철한 자원봉사자로 변신한 사람이 있다.
"매우 활동적인 성격 때문에 부단히 움직여야만 직성이 풀린다"는 송영덕(78)씨는 "무척이나 쌀쌀해진 날씨
탓으로 외출이 꺼려지는 계절이지만 이럴 때 일수록 몸을 많이 움직이고 활동적으로 생활해야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고 말한다.
나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생동감 있는 모습으로 일상을 보내는 자원봉사자 송씨는 운수업에 오랫동안 종사하다가 지난 2004년 퇴직한 이후 여주노인복지관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다. 비슷한 연령대의 어르신들이 마음 편하게 복지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그의 역할이다.
송영덕 씨의 인생 여정 이야기는 6.25가 발발하자 열아홉 나이로 전선에 나가 학도병으로 활동한 것에서부터 불이 붙기 시작한다.
이어지는 전쟁 참여담에서 백마고지 전투의 치열했던 상황이 눈에 그려지듯이 생생하고, 전차부대에 배속됐으나 전차가 오지 않아 수색중대로 다시 배속됐다는 웃지 못할 아픔은 그가 겪었던 엄연한 현실이다.
군대를 제대하고 서울 동대문에서 뚝섬을 운행하던 전차(電車) 운전을 시작으로 평생을 운수업에 종사하게 된 송씨의 사연이 구구절절하게 전개된다.
서울에서 전차가 사라지면서 일자리를 잃고 실업자가 된 그가 선택한 것은 ‘시발택시(1950년대 운행되던 지프를 개조한 택시)’운전. 시발택시를 운전한 경험을 살려 서울에서 버스회사에 취직한 송씨는 자재담당자로 20년이 넘도록 봉직하게 되면서, 이때 여주에서 서울까지 매일같이 출퇴근을 하는 생활이 일찍 일어나는 습관으로 정착됐다.
꼼꼼하고 빈틈없는 성격과 일처리로 회사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얻은 그에게 버스회사는 정년퇴직 이후 10년이 넘도록 일자리를 제공해 주었고, 만74세까지 현직에서 일하게 만들었다.
지금도 그의 몸놀림과 활동성을 보면 날렵한 청년을 연상케 하고, 예절바른 모습과 민첩하게 움직이는 만 78세의 송영덕 옹은 그야말로 청춘이다.
노인복지관의 출근시간이 9시이지만 그는 8시에 나와 물이 떨어진 정수기에 물을 채우고, 커피 자판기에 컵도 보충하며 각 교실과 강당을 일일이 다니면서 문을 열어놓는다.
복지관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한지도 벌써 5년째. 워낙 활동적인 성격 탓으로 오전 일과는 순식간에 지나간다.복지관 이곳저곳 꼼꼼하게 살피며 정신없이 봉사에 열정을 바친 사이, 송씨의 인생가치는 그만큼 아름답게 무르익어 가고 있다.
"본인들의 차량으로 자비를 들여서 여주지역 곳곳에 독거노인 등 소외된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가 반찬을 나르는 자원봉사자들을 보면서, 참된 자원봉사의 의미를 생각한다" 며 오히려 자신의 봉사활동은 대수롭지 않다고 겸손해 한다.
오전에 봉사활동을 마치고 오후에는 성경대학에서 성경을 공부하고 있는 송영덕 옹은 "시켜만 준다면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순간까지 봉사를 하고 싶다"는 담담한 말로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명쾌한 대답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송영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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