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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지방보훈청, “3월의 우리고장 현충시설 - 이동녕선생 기념관·생가”

[대전타임뉴스=홍대인 기자] 대전지방보훈청(청장 이명현)과 홍성보훈지청(지청장 이태용)이 대전·세종·충남지역의 ‘3월의 우리고장 현충시설’로 ‘이동녕선생 기념관·생가’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석오 이동녕선생은 1869년 천안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1896년 독립협회에 참여했으며 1904년 상동청년회에서 활동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이상설 등과 만주에 있는 용정촌으로 망명하여 서전서숙을 설립했다. 1907년 귀국하여 안창호, 김구 등과 함께 신민회를 조직하고, 1910년에 만주로 건너가 이시영, 이강영 등과 함께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했다. 1913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권업회를 조직하고, 1919년에는 상해임시정부의 의정원 원장, 외무총장을 지냈다.



그뒤 국무총리, 국무위원주석을 겸무하다가 1928년 한국독립당을 결성하여 이사장이 되었으며, 1935년 한국국민당 간부로 활약했다.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난 뒤 1939년 김구와 함께 전시 내각을 구성하고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싸우다가 중국 쓰촨성에서 병사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이동녕선생 생가는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동리에 있다.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하신 이동녕선생이 태어나신 곳이다. 2005년 12월 생가지 보수 및 정비가 완료되었다. 생가에는 안방, 사랑채 등 옛가구 및 인물모형이 전시되어 있으며, 주변에는 우물, 이동녕선생 좌상(포토존)이 설치되어 있다.

이동녕선생 기념관은 2010년 개관되었으며 생가와 마주하고 있다. 기념관 앞에는 선생이 생전에 자주 인용한 산류천석(山溜穿石: 산에서 흐르는 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뜻으로, 물방울이라도 끊임없이 떨어지면 종내엔 돌에 구멍을 뚫듯이 작은 노력이라도 끈기 있게 계속하면 큰일을 이룰 수 있음)을 새긴 가로 3m, 세로 5m 규모의 휘호석이 세워져 있다.



기념관 입구에는 선생의 흉상과 태극기를 배치하였고, 안에는 선생의 유품과 함께 연보, 가계도, 삶과 사상 등을 소개하는 ‘석오 이야기’와 독립운동 및 임시정부 활동을 소개하는 ‘구국의 일정’ 등 6개의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



홍대인 기자 홍대인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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