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전인 1953년 7월 27일, 3년여 간 한반도에 울렸던 총성이 멈춘 날, 바로 6.25전쟁 정전협정을 맺은 날이다. 또한 이 날은 유엔 참전 22개국 195만 참전용사의 희생과 헌신에 감사를 표하는 날로 2013년부터 국가기념일로 지정한 날이기도 하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경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은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계속되었다. 6.25전쟁에서 유엔군과 공산군은 38도선을 3번씩이나 오르내리는 격전을 치르면서 협상으로 전쟁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이후 판문점에서는 휴전회담이 휴회와 재개를 반복하며 진행되었고, 전선에서는 휴전 이후의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국군을 비롯한 유엔군과 공산군 간에 치열한 고지쟁탈전이 전개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전후 한국에 대한 안전보장이 없는 가운데 추진되고 있는 휴전협상에 반대하면서 반공포로 석방으로 미국을 압박했다.
결국 한국 정부는 휴전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미국으로부터 전후 상호방위조약 체결과 경제원조 그리고 한국군 증강 약속을 받아냈다.
이렇게 휴전회담은 6.25전쟁이 발발한지 3년여 만에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유엔군 측 대표와 공산군 측 대표가 협정문에 서명하는 것으로 세계 최장의 ‘정전협정’이 이루어졌다.
이렇게 ‘정전협정’이 이루어진 지 어느덧 70년이 지났다. 6.25전쟁에 참전하신 유공자분들은 80대, 90대에 접어들었고 살아가신 분들은 이제 전국에 4만여 명 남짓이다.
살아계시는 동안 더 최고의 예우를 다해드리기 위해 2023년 국가보훈부에서는 평소에 조끼를 입고 다니셨던 참전용사분들께 새로운 제복을 지급하는 ‘제복의 영웅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앞서 6월 호국보훈의 달에 제복을 받아보고 뿌듯해하는 참전용사분들을 보며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또한 전쟁은 멈추었지만 6.25전쟁으로 인한 한국군 및 유엔군 전사자는 17만 5,801명에 달하며 아직 찾지 못한 유해는 12만 1,879명에 달한다.
보훈부에서는 121879 태극기 뱃지를 제작하여 단 한 분의 실종자가 남는 그 순간까지 국가가 찾겠다는 각오로 6.25전쟁 전사자의 유해와 실종자를 찾기 위해 적극적으로 발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정전협정’ 이후 생존해계신 참전유공자분들, 유엔참전용사분들을 최고로 예우하고 70여 년이 지나도록 아직 가족의 곁에 돌아가지 못한 용사들을 가족의 곁에 돌려놓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당면한 과제일 것이다.
정전을 맺고, 70년이 지나는 동안 우리나라는 1953년 GDP 67$의세계 최빈국에서 2022년 세계 12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한 한국을 보며 방한한 유엔참전군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일과 더불어 유엔군 참전의 날을 기억하는 이유는 ‘정전협정’과 ‘유엔군’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나라가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쳤던 유엔(UN)군 참전용사들의 뜻 깊은 희생에 머리숙여 감사와 존경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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