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제112주년 경술국치일(庚戌國恥日)에 즈음하여
조은희 | 기사입력 2022-08-26 12:27:44

[충북남부보훈지청 보훈과 김명식] 입추, 말복, 처서가 지나가고, 지금은 막바지 폭염(暴炎)이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세월의 작용에는 그 어느 것도 예외가 없어 곧 청량한 가을이 도래할 것이고, 이어서 북풍한설(北風寒雪)이 휘날리는 동절기가 다가올 것입니다.


8월 하면 광복절, 입추, 말복, 처서 등이 떠오르겠지만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일자가 있으니, 바로 국치일(國恥日)로서 지금으로부터 112년 전인 서기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이 국권을 상실한 날짜입니다. 국가의 멸망은 아주 수치스러운 일로서 국치일이라고 하며, 당년도가 경술년이어서 경술국치라고도 합니다.


광복절(光復節)을 잘 알지 못하는 국민은 없겠지만, 국치일을 잘 아는 국민은 별로 없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경축스러운, 영광스러운 날은 찬양하고, 축복하고 기리고 하겠지만, 정반대의 날은 그렇지 아니할 것입니다. 회피하고, 감추고 싶은 심정일 것입니다.


그러나 항상 좋고 경사스럽고 영광스러운 날만 지속되면 더 말할 나위 없겠지만, 세상에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 하나의 이상향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한 개인도 부침(浮沈)이 있듯이, 한 국가도 부침이 있는 것으로, 태어나서 죽지 않는 사람이 없고, 건국한 국가 중 멸망하지 않는 국가는 동서고금을 통해서 볼 때 그러한 국가는 없습니다.


현재 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무력 등을 주도하는 전성기의 국가도 있지만 거국적인 차원에서 볼 때, 비교적 근세에 태동된 국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국치일이라 하여 무조건 회피하거나 감출 필요가 없으며, 더구나 왜곡할 필요는 없는 것으로 만약 그렇게 되면 진실이 왜곡되어 실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게 됩니다. 그 결과로 제2, 제3의 국치일을 겪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경우 국치일이 까마득한 옛날의 일 같지만, 불과 112년 전의 일로서 그렇게 먼 과거의 일이 아닙니다. 현재 당시의 생존자는 거의 없겠지만, 현재 생존자의 부모, 조부, 증조부, 고조부 세대는 당시의 상황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조선왕조개국 519년이요, 대한제국 수립 14년 후의 일입니다. 조선왕조는 왕조를 유지하는 동안 임진왜란(壬辰倭亂), 병자호란(丙子胡亂)의 위기에 봉착하여, 국운이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위기에 직면하여 진퇴유곡의 곤란한 상황에 처한 적이 있었음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특히 임진왜란의 경우 전 국토가 왜인에게 유린되었고, 국민은 도탄에 빠지고, 충신열사등의 간난신고(艱難辛苦), 분골쇄신(粉骨碎身)끝에 왜란은 겨우 종식되었지만, 종식된 지 300년 겨우 지나, 그것도 왜인에 이제는 국권을 아예 송두리째 상실되어 식민지로 전락 되었으니, 참으로 통탄할 일입니다.


왜란 전에도 왜인의 침략이 충분히 예견되었음에도 이에 대한 대책을 수립하기는커녕, 권력을 획득하여 영구완전한 부귀공명을 자손대대 누리려, 외부의 세계와는 도외시한 채, 고질적 당쟁과, 고식적 대책만 강구하는 등의 내부 모순적인 소모전만 전개하고 있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천하가 비록 편안하나 전쟁을 잊으면 반드시 위기가 닥쳐온다(天下雖安 忘戰必危)는 말의 교훈도 까막득하게 잊고서, 우물안 개구리처럼 내부모순에 국력을 소진하니 위기는 서서히 다가오고 있음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고, 설사 감지하였더라도 이에 대한 대책을 얼마나 강구하였을까 생각해 봅니다.


국가의 멸망은 내부의 모순이 누적되어 민심이 이반되고, 위정자는 권력획득을 위한 정쟁에만 몰두하고, 경제는 도탄에 빠지고, 각자는 사리사욕에 매몰되어 마침내 국력은 쇠퇴하여 쇠망의 늪에 빠지게 되어있는데, 이때 외부에서 침입하면 속수무책으로 멸망지환의 화를 당하게 됩니다.


어느 국가건 멸망은 내부에서 모순이 발생하여 소모전만 전개하다 국력이 쇠퇴하여 재기의 여력이 없을 때 외부의 침입을 받아 멸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외부에서 침입한다 하여 저절로 붕괴되는 것은 없는 것으로, 충분히 대처가 되어있다면 외적을 물리치고 여력이 있다면 외적도 정벌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러한 대책이 전혀 없거나 미봉책에 불과하다면, 외부의 침입에 대하여 방어태세가 없어 속수무책으로 멸망의 길로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외부의 침입은 아무 때나 있는 것이 아니고 국력이 쇠퇴할 때 발생하는 것으로 대책이 없다면 스스로 불러들이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대한제국이 비록 왜인에 의하여 국권이 상실되었지만 하루 아침에 상실된 것이 아니고 서서히 국력이 쇠퇴하여 속수무책으로 식민지로 전락한 것입니다.


부흥의 길도 여러번 있었지만 내부의 불필요한 소모적 정쟁과 외부에 대한 제대로의 정책 부재 및 고식적 대책 등으로 인하여 서서히 침몰되어갔던 것입니다.


선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아 천우신조로 광복을 맞이하였지만, 우리의 자체역량이 아닌 연합국의 승리로 온전한 광복이 되지 못하고, 국토는 우리의 의사와는 전혀 다르게 외세에 의하여 양단되는 사태가 발생하여, 동족상쟁의 비극이 잉태되고 있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번 국권이 상실되면 국권회복이 얼마나 어려운지 절감을 해야 할 것입니다. 경술년에 국권이 상실되어 국권회복을 위하여 국내외에서 선열들의 독립투쟁이 계속 전개되었지만 결국은 연합국의 승리로 광복은 맞이하였습니다.


광복은 되었었지만 곧바로 통치제제를 구축한 정부가 수립된 아니고, 우여곡절 과도기를 거쳐 통지체제를 구축한 정부가 수립되어 본격적인 발전을 하게 됩니다.


정부가 수립되었지만 2년이 경과하기 전 북한 공산당의 불법 기습남침인 6.25사변으로 그야말로 국토는 폐허화되고 인명 및 재산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났으며 그 전흔과 피해는 현재 진행 중에 있습니다.


이 같은 비극의 원천은 대한제국의 국권상실에 기인한 것으로 대한제국이 국권이 상실되지 아니했더라면 굴욕의 식민통치를 겪지 아니했을 것이며, 국토도 온전하여 외세에 의하여 양단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며, 특히 6.25사변은 발발하지 아니했을 가정을 해보지만 가정일 뿐, 대한제국의 국권상실에 통탄할 뿐입니다.


현실을 직시하여 미래로 가는 길을 개척해야 할 것이며 과거는 단순한 과거가 아니고 현재와 이어진 것이며 또한 미래로 연결된 것으로 국권상실의 교훈을 가슴 깊이 새겼으면 합니다.


8.15해방이 우리의 자체역량이 축적되기를 대기하였다가 도래한 것이 아니듯, 통일도 분명히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도래할 것임을 확신하며, 미래는 항상 준비하는 자의 몫임을 항상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제112주년 경술년 국치일에 국치일이 의미하는 교훈을 살펴보고, 하절기에서 춘절기로 바뀌는 환절기에 동절기까지 생각하여 미리 대비하는 정신자세가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함을 느껴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과거에 너무 연연할 필요가 없으며, 인접국만 탓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자체역량을 꾸준히 배양하여 대비한다면 미구에 민족의 앞날에 서광이 비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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