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타임뉴스=조은희] 국가보훈처(처장 황기철)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박원희, 김영순, 조복금 선생을 2022년 5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박원희, 김영순, 조복금 선생은 근우회 활동을 이끈 여성독립운동가로, 근우회의 창립은 한국 근대 여성운동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는 측면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박원희 선생은 대전에서 태어나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부설 사범과를 졸업하였다. 선생은 1924년 최초의 사회주의 여성단체인 여성동우회와 1925년 초 서울파 공산주의 그룹의 여성단체인 경성여자청년회를 조직하고 이를 이끌었다. 1926년 말에는 화요회계 여성단체인 경성여자청년동맹과 함께 통합적 사회주의 단체인 중앙여자청년동맹을 조직하였는데, 이는 근우회 탄생의 밑거름이 되었다.
김영순 선생은 서울에서 태어나 정신여학교를 졸업하였다. 1919년 정신여학교 사감으로 있을 때, 이곳에서 결성된 대한민국 애국부인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선생은 서기에 선임되어 활약하였으나 1919년 11월 그 조직이 드러나면서 선생도 함께 체포되었고, 1920년 12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태화여자관 교사를 거쳐 정신여학교 사감으로 재직하였으며, 1927년 근우회 창립을 이끌었다.
근우회 창립총회에서 21명의 집행위원이 선출되었는데, 박원희, 김영순 선생도 이에 포함되었다. 두 선생은 총회에 참여하여 근우회 활동의 청사진이 될 8개 항을 결의하였다.
박원희 선생은 신간회 본부의 정기대회 준비 활동, 신간회 경성지회 활동 등 신간회 활동에도 참여했으나, 병고로 1928년 1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김영순 선생은 신간회 창립 및 제1회 집행위원회 활동 이후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지만, 박원희와 함께 교양부를 맡아 여성의 지위 향상과 항일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조복금 선생은 경상남도 하동에서 태어나, 1926년 1월 진주여자잠업강습소를 졸업하였다. 이후 경남 하동에서 여성 청년단체 및 근우회 활동을 이끌었고, 1928년 3월 개최된 하동청년동맹여자지부 제1회 정기대회에서 제영순과 함께 서무재정부 역원으로 선출되었다. 전국적인 통일기관이었던 근우회는 지역의 지회 결성을 추진하였는데 1928년 7월 근우회 하동지회가 결성되었고, 조복금 선생은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정부에서는 고인들의 공훈을 기려 박원희 선생에게 200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김영순 선생에게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조복금 선생에게 201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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