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타임뉴스=박승민 서태안 Reset]우리 모두는 선택이 죄악인 디스토피아(dystopia) 세상에서 안도(安堵)감을 보장받고 제식(制式)에 따라 움직이는 만족한 삶을 살고 있다. '안도' 의 어원은 "성곽 밖이 아닌 안쪽에 거주한다' 는 의미에서 기원된다.
우리들 세상에서는 기억을 잊는 주사를 정기적으로 주입하고 유일한 기억전달자에 의해 옛이야기를 들으며 정해진 규율과 규칙을 지키면서 걱정없는 이곳에서 사는 것을 '행복' 이라 한다.
이곳에서는 출생(birth)과 죽음(death)의 시간속에 누릴수 있었던 최고의 권위인 선택(choice)은 없다. 생각하고 기억할 수 있는 휴머니스트(humanist)를 벗어던지고 자존감(self-respec)이 필요없는 세상에서 경쟁이나 투쟁없이 평안함을 누린다.
로이스 로리(Lois Lowry, 1937년)의 암울한 세상 '기억전달자' 가 주인으로 지배되는 넥스트 휴먼들이 살아가는 오늘날의 우리 모습이다.
디스토피아 세상에서는 "정해진 대상과 결혼해야 하고 남녀 간의 신체접촉도 할 수 없다. 사랑을 할 수 없으니 인큐베이터를 통해 태어날때부터 난자와 정자는 제거된다. 어떠한 폭언이나 폭력 연출은 법으로 금기시 되었고 미간을 찌푸리며 상대에게 혐오감을 주는 것도 죄가 된다. 오래 전 휴머니스트들이 동물에게 거세했던 시대가 투영된다.
언어는 순화되어 타짜가(자신 외)듣기 좋은 말을 할 수 있도록 정기적인 교육을 받아야 하며 선대의 개척정신과 투쟁의지는 '기억전달자' 가 들려주는 전설이 되었다.
그들 선대의 휴머니스트는 어떠했을까..
권리는 곧 선택이였으며 자존감은 필수였다. 스스로를 경외하고 자신을 존중함으로서 존엄성의 최고의 권위인 정신적 자유(freeedem)를 누렸다.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를 행사하고 책임에 따른 의무는 스스로 감내해야 했으며 그렇기에 미완성으로 태어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존재감을 최상의 행복으로 여겼다.
넥스트 휴먼의 세상에 사는 우리는 고뇌속 '선택의 행복' 은 잊고 산다. 자신을 신뢰한다는 것은 내가 사는 세상을 의심한다는 것이기에 곧 동 시대에서는 죄가 된다. 동일하게 주어진 여유로운 식탁에서 정해진 룰(rule)대로 움직이면 풍족한 음식을 부족하지 않도록 배급 받을 수 있다.
그렇기에 누구에게나 평등하며 불공정은 퇴출된지 오래다. 그러나 망각의 주사를 맞지 않는 이들에게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반역의 증상이 일상에선 흔히 볼 수 없으나 간헐적으로 언론이나 TV를 통해 토픽감으로 전달된다.
용기는 혐오감을 불러왔고 정해진 규칙이나 제식에 따르는 것이 곧 "정의" 로운 행동으로 칭찬 받는다. 이를 위반하면 가장 무서운 "고립" 이란 체벌이 주어진다. 외로움은 우리에게 가장 큰 고통이다. 선대가 최선으로 여겼던 '굳건한 의지' ' 또한 전래동화가 되었다.
여기는 넥스트 휴먼의 세상, 신이 만든 인간은 원초적 본성을 가졌으나 우리는 국가에서 정한 규율과 신호체제에 순응하는 것만이 곧 행복이라 생각한다. 사물의 유추는 곧 죄였으며 사고의 전환ㆍ창의적 발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지만 그저 웃고ㆍ먹고ㆍ자고 행복한 일상의 연속이 이어진다.
파도가 일며 뭉글뭉글 일어나는 포말과 같이 뭉쳐졌다 사라졌다 를 반복하는 현상을 '기억' 이라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이란 "단절과 연속을 파악하는 지금 이 시간의 나" 로 정의된다.
'의지' 란 파도처럼 거대한 바위에 부딪혀 부서지기를 반복하나 지치지 않고 연속되는 특징으로 비유된다.
'기억전달자' 는 이런 휴머니스트의 세상을 고대에나 있었을 법한 신화라고 전하고 있다. 필자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넥스트 휴먼이 살아가는 디스토피아 세상' 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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