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은 삶의 한 부분"…술에 빠졌던 의사가 쓴 '중독의 역사'
美 컬럼비아대 정신과 교수 펴낸 중독의 본질과 회복 이야기
설소연 | 기사입력 2024-02-03 17:07:54
[타임뉴스-설소연기자]고등학교 시절 처음 마신 술은 마법 같았다. 사교적 불안이 증발했고 자유로웠다. 그는 대학 졸업 후 한국의 신경과학 연구소 특별 연구원 자격으로 서울에 머물면서도 술을 퍼마셨다. 스님을 만나 참선을 배웠지만 술과 스타크래프트 게임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손에 소주병을 들고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했다.

점점 더 나쁜 결과가 찾아왔다. 급기야 그는 자기 아파트에서 뉴욕 경찰이 쏜 테이저건을 맞고 벨뷰 병원 정신과 응급실로 옮겨졌다. 재활 치료를 받은 그는 술을 끊겠다고 결심했다. 미국 컬럼비아대 정신과 레지던트 과정으로 복귀한 뒤 중독 의학 전문가가 되기로 했다. 컬럼비아대 정신의학과 교수이자 중독 전문 의사인 칼 에릭 피셔의 이야기다.

칼 에릭 피셔가 쓴 논픽션 '중독의 역사'는 중독의 본질과 회복에 접근하고자 인류와 함께해온 중독의 역사를 파헤친 책이다.

저자는 전문가로서 의학, 과학, 철학, 공공정책을 아우르며 중독의 역사를 살펴보고, 알코올 중독 부모를 둔 중독자로서 자기 경험을 고백하는 방식으로 서술했다. 연구 기간을 포함해 이 책을 쓰는 데만 10년이 걸렸다.

책에 따르면 중독은 고대 그리스와 중국, 인도, 유럽의 중세와 근대를 거치며 개념이 형성됐다. 중독을 질병으로 보는 관념과 이에 대응하는 운동은 주로 근대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책도 대체로 미국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역사상 가장 오래된 중독의 사례는 약물이 아니라 도박과 관련이 있다. 가장 오래된 현존 문헌의 하나인 인도 리그베다에는 '노름꾼의 애가'란 시에서 도박 중독을 언급했다.

담배는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탐험대가 발견했다. 이들은 타이노족 부락에서 처음 보는 식물을 말아 불을 붙이고 연기를 흡입하는 원주민의 관습을 접했다. 금을 원했던 콜럼버스는 자신이 훗날 아메리카의 엄청난 환금 작물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담배는 몇 년 뒤 유럽까지 유행 아이템이 되고 널리 확산하며 처벌과 금지 조치도 나왔다.

이러한 중독 문제에 인류는 여러 방식으로 대응해왔다. 처벌과 강제로 억제해야 한다는 금지론적 접근법, 강박과 충동에 의한 것이므로 의학적으로 다뤄야 한다는 치료적 접근법, 두뇌의 기능 이상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생물학적으로 치료해야 한다는 환원론적 접근법, 연대를 통한 정신력 고양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서로 돕기 접근법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접근법이 각기 한계와 부작용을 낳았다면서 근래에는 중독을 확연한 질병이라기보다 "인간 정신의 보편적인 특징"으로 보기에 이르렀다고 설명한다. 여전히 술, 담배, 커피 같은 기호품부터 게임과 도박, 각종 약물, 생활필수품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스마트폰까지 중독은 다양한 형태로 함께 하고 있다.

저자는 "중독이 영구불변의 사실로서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사회적 요인과 문화적 요인에 크게 좌우된다"고 말한다.

이로 인해 중독과 싸워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인간 삶의 한 부분으로 인정해야 물질 사용 문제를 겪는 사람들을 실효적으로 도울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규제와 단속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금지 일변도는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으므로, 중독에 낙인찍는 태도를 버리고 다양한 물리적, 개인적, 사회적 자원이 두루 어우러지는 회복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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