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나' 의 감각에 속고 사는 ' 나' 에 대한 고찰
설소연 | 기사입력 2023-09-26 08:15:11
[태안군전피해민대책위원회 사무총장]
[태안타임뉴스=서태안 박승민 Reset]이유없이 태어난 '나' 에게 매순간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선택의 권리는 쥐고 있다. 한편 그 권리에는 숙명적 책임과 관계를 맺는다. 동시 '나' 는 상처와 치유를 반복하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된다. 반면 '나' 에게 주어진 유한한 시간은 내주어야 한다. 뒤집어 생각하면 '나' 의 고통으로 금쪽같은 시간과 맞바꾼 거래였다.

때는 늦었으나 "침묵' 을 얻은 것으로 만족한 어느 날 죽음이란 불청객은 창문을 두드린다. 그 찰나 "신은 죽었다" 는 니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살아지면서 (선택적)권리와 맞바꾼 책임을 외면할 때가 더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나' 를 벌할 수 있는 죄책감은 촘촘한 그물로 '나' 를 체포하려 하였고, 본성에 숨겨진 자책은 꿈에서조차 옥죄기를 반복했다. 일상에서의 도피란 하루 하루가 고통임을 느낀다.

붓다는 이를 업보라 했다. 후대 대승불교는 '훈습' 으로 바꾸면서 혼돈이 있었으나 이것이냐! 저것이냐! 따지는 것은 무용지물이다. 경전이나 명구는 둘러치나 메치나 진리라는 외통수에 나아갈 수 없다. 침묵이라는 덕(德)을 얻었다면 그만이리라..

훈습의 직역은 '향의 냄새가 옷에 밴다' 는 뜻이다. '나' 의 행동이 '나' 의 범주에 한정된다는 편협한 생각이 대중 속에 깃들자 붓다의 제자들은 쐐기를 박았다. 심오한 '업보' 에 생소한 대중은 향내에 익숙한 '훈습' 으로 바꾸자 '업보' 와 동일시 했다. 맵시있는 용어의 대체는 초오독을 제거한 화타의 명성처럼 빠르게 퍼져갔다.

이즈음 훈습의 파장은 '나' 를 비롯하여 천륜의 관계까지 차꼬(형틀)를 채운다, 그것도 부족한지 유전적 악재에 예감(feel)까지 덧씌웠다.

예감이란 정해진 대상을 매개체에 기생하는 관계로서 반은 틀리고 반은 맞다. 호불호(好不好)라는 것을 알고도 묵살할 수 없는 점괘다. 점(占)집은 그래서 내리 호황을 누렸다.

한편 훈습은 비극과는 필연이다. 고전을 통해서도 익히 접할 수 있는 업보의 전승(傳承)으로 굳혀졌다. 근대사 유명한 조선 최고의 간신 김자점의 후손, 백범 김구의 흑역사와 횡액사건도 훈습과 관계를 맺었다.

장화홍련처럼 뻔한 스토리가 누구에게나 흥미진진한 이유는 '내' 주변에 누구ㆍ누구는 저 비극의 주인공일텐데! 하는 감정전이 또는 표상의 동일시 현상은 '나' 의 좌절된 욕구 불만족에 대한 보상심리라고 분석한 프로이트(1859~1939년)가 있다.

이와 같은 원칙을 불변의 법칙이라 한다. 이 법칙을 '나' 의 유한한 시간에 한정해 가능성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무이한 경우의 수는 '이성(理性)' 뿐이다.

이성이란, 앎을 의미하며 앎은 목적없는 지식을 뜻한다. 반면 목적 있는 지식은 타고난 감각 내지 직관에 의존하는 동물의 생존본능(육구)에 속한다. 달리 후마니타스(인문학)계에선 기술적 지식으로 폄하된다.

여기서 본능에 귀속된 욕구를 모티베이션(motivation)이라 한다. 모티브는 구성원 또는 구성요인을 뜻한다. 연장선에서 동기 내지 의욕은 동인(인과)을 수반한다. 이 과정에서 목표로 삼은 대상을 유인하고 포섭하려는 성질, 그 성질은 업보 또는 훈습으로 이어지며 '나' 에게 작동된다는 로고스를 파고들면 끝은 언제나 윤회로 귀결된다.

모티베이션의 특질은 '내' 가 소비할 손실의 2배를 넘어선 이익이 보장된다고 유추될 때 발동하는 동기(動機 베틀 기) 즉 결과를 생산할 수 있는 기계로서 베틀(솔루션)과 연동된다.

이토록 기기묘묘한 작동 계획은 상호 연동되는 분자핵이 그 시원(始原)이라고 뇌과학 사이언스지는 밝혔다. 그리스어로는 '끈(mitos)으로 둘둘 말린 낱알(chondros)' 로 명명된다. 그 주역은 5억년 전 '나' 의 기원이 된 미토콘트리아의 출현으로부터 시작됬다.

'나' 의 몸을 구성한 분자핵(미토콘트리아)조차 생존을 위한 본능을 욕구라는 매개체와 동기화하면서 손익을 모의한 고대 어원 및 근대 사이언스 논문에 근거한다면, '나' 에게 주어진 선택은 5대 정념을 배제한 채 이성에 의지해야 한다는 점은 명백해졌다.


따라서 ’훈습‘은 선택의 권리가 주어진 대신 그 책임의 도피에는 가차없는 비극을 보여준다. 불문률이 세계를 지배하는 자연법칙이 밝혀진 순간 '(상징적)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언명은 자연(Mother Nature)에서 출현한 존재 곧 자신이 신(Nature)이라는 것을 증명하려 한 권력의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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