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전현충원 ‘24.4월 이달의 영웅 스토리 소개
평생을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애국지사 김승학
홍대인 | 기사입력 2024-03-29 16:44:28

[대전타임뉴스=홍대인 기자] 국가보훈부 국립대전현충원은『국립대전현충원에서 만나는 우리들의 영웅』누리집(www.dnchero.kr) <온라인 홍보관>을 통해 ’24. 4월 이달의 영웅 스토리를 게시했다고 밝혔다.

4월의 영웅스토리는 「평생을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애국지사 김승학」의이야기로 구성했다.

김승학 지사는 1881년 7월 12일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났으며, 1900년 3월 15일 증곡재에서 운암 박문일 제사 후 조병준과 노유 장원섭이 시국을 통한하며 거의를 독려하는 강의를 듣고 서간도 망명과 항일운동을 결심했으며, 1907년 7월 한일신협약(정미7조약) 체결에 반대하여 서울 종로에서 배일 연설을 하다 평리원 구치장에 3개월 간 유치됐다.

1919년 8월부터 1920년 1월에는 대한독립단 및 임시정부 평안북도 독판부 특파원으로 활약하면서 평안도, 황해도 일대에 연통제를 조직하였고 88개소에 독립단 지단 조직 및 독립운동 자금 수만원을 모금했으며, 1920년 상하이로 떠나 무기 240정과 탄환 수만 발을 구입, 광복군사령부 군인들에게 무기를 분배하여 광복군사령부 휘하 독립군 부대들은 이 무기를 가지고 3~4개월 동안 일본군과 78회 교전하면서, 56개 주재소 공격, 20개소의 면사무소와 영림창을 불태우거나 파괴했으며, 일본 군경 95명을 사살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1921년에는 프랑스 조계 당국과 교섭해 독립신문 복간을 허가 받고 가지고 있던 자금을 이용해 신문사와 인쇄소를 복구하였다. 1921년 4월 중순 독립신문은 복간되기 시작하고, 선생은 독립신문사 사장을 맡아 그 발행을 총괄했다.

1929년 혁신의회 회의를 마치고 귀대하다가 일제 경찰에게 붙잡혀 신의주 구치감에서 14개월 동안 미결수로 있다가, 평양형무소에서 5년 동안 옥고를 겪고, 1937년 5월 중국 베이징으로 망명하여 임시정부 재중국 북경비밀기관장으로 활동, 1939년 11월 4일 비밀 활동 사실이 탄로나 한커우 등지로 피신하던 중 광복을 맞이했다.

한편 그는 한국독립운동사를 편찬한 역사가였다. 1921년 독립신문 사장 때부터 독립운동 관련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하였으며, 6·25전쟁 중인 1952년 부산에서 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를 조직하여 편찬에 들어갔다. 그가 한국독립운동사 편찬위원장이 되어 독립운동에 참여한 동지들과 함께 <한국독립운동사>를 1955년에 완성하여 1956년 2월에 발간하였으며, 다시 미비한 점을 보완하여 <한국독립사> 원고를 완성하였으나, 출간되기 직전인 1964년 12월 17일 사망했다.

1965년 9월 그의 유고를 바탕으로 <한국독립사>가 발간되었으며, 총 773쪽에 달하는 저서로서 2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는 독립운동사의 서훈에 기초자료가 되어 민족정기를 확립하는데 기여를 하기도 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으며, 현재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제4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24.4월 이달의 영웅스토리에 대한 보다 생생하고 구체적인 내용은 『국립대전현충원에서 만나는 우리들의 영웅』 누리집에서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