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 남형석】‘한국의 역사마을’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하회마을의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선생의 종택(宗宅)인 충효당에서는 10월 30일 종가 대청에서 길사(吉祀)를 봉행했다. 이번 길사는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의 15세손인 류창해(柳昌海, 58)씨가 지난 9월 18일 부친 류영하(寧夏)공의 기년상((朞年喪)을 마치고, 서애(西厓)와 4대 선조에게 차례로 충효당의 새 종손이 되었음을 고유(告由)하는 제사이다. 충효당은 지난 1975년에 길사가 있었다. 당시 시영(時泳)공의 3년상을 마친 영하(寧夏)공은 충효당 종손의 계보를 잇는 의미의 길사를 치른 바 있다. 당시의 종손 영하(寧夏)공이 졸(卒)하고 그의 아들 창해(昌海)씨가 새종손이 된다는 의미의 길사가 40년 만에 다시 치러지는 것이다.
이처럼 길사(吉祀)는 평생 동안 한번 보면 다행이라고 할 만큼 매우 귀한 제사이다. 각종 제사(祭祀)가 고인의 뜻을 기리는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지지만 길사(吉祀)는 말 그대로 즐거운 마음으로 축하와 덕담을 주고받으며 지내는 제사라는 점도 일반 제사와는 차이가 있다. 길사에는 많은 후손 및 문중원 그리고 선조의 세의(世誼)를 앞세운 후예(後裔)들이 망라하여 참석한다. 또 길사(吉祀)에 소요되는 경비는 문중에서 부담하며 당일에는 문중의 큰 축제가 되고 이를 통해 문중의 정체성과 긍지, 자부심을 고취하기도 한다.
길사를 지내게 되는 가장 큰 목적은 종가를 지켜가기 위함이다. 종택(宗宅)과 종손(宗孫)은 한 가문(家門)의 상징으로 종손․종부가 사는 곳을 종택(宗宅)이라 하며, 명문가를 자처하는 가문은 종택을 중심으로 선조들이 남긴 학문적 성과와 위업을 지키고 이어가는데 모든 문중의 역량을 다한다. 또 종가는 조상의 위패를 모시는 신성공간인 사당(祀堂)을 가지며, 사당 안에 감실(龕室)을 두고 조상의 신주를 모신다. 이렇게 모신 신주는 조상이 살아계신 듯 경건하고 신성하게 보호되며, 조상의 기일이 되면 성심을 다해 제사를 받들고 찾아오는 손님을 한 치의 소홀함 없이 정성을 다해 모신다. 이를 “봉제사(奉祭祀) 접빈객(接賓客)”의 전통으로 정의하며, 이는 곧 안동문화의 특징으로 이해되고 안동을 가장 안동답게 설명하는 관용어가 되고 있다.
한편 종가를 중심으로 종손과 지손들이 서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조직화한 단체가 문중(門中)이며 이로써 한 가문(家門)이 탄생한다. 안동의 종손들은 벼슬길에 나아가기보다는 학문을 연구하고 덕성을 기르는 인격의 완성이 더 중요하다는 학자적 긍지를 지켜왔다. 선비가 지녀야 할 덕목으로써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생활화하며 선비의 높은 도덕률로 양반의 체통을 지켰다. 이들은 대의명분을 따져서 이에 순할 수 있는 의리와 용기와 지조를 가지고 체면을 중요하게 생각하였으며 나아가서는 철저한 유교적 충효관으로 국가와 가문, 사회에의 공헌을 귀중히 여겼다. 안동의 종손들은 목숨과도 바꾸며 지켜온 자신들의 세계관과 이상을 그들의 자식으로 하여금 생활 속에 실천하도록 가르쳤고, 문중이란 공동체를 통하여 오늘날까지도 이어오고 있다.
안동에서는 “종손은 지손을 먹여 살리지 못하지만 지손들은 종손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말이 있을 만큼 종손에 대한 향념이 그 어느 지방보다 크다. 이러한 향념은 보종(保宗)과 문벌(門閥)이라는 독특한 제도를 통해 안동의 문중과 넓게는 유림사회를 지탱했다. 따라서 종가는 한 문중의 가장 상징적 존재로 자손 모두의 의지와 문화의 중심체이기도 하다.
이러한 종가를 지키는 종손과 종부의 권위와 책임을 다하게 하는 의례가 길사로 항간에서는 종손․종부의 취임식이라고 할 만큼 종손․종부의 책임과 문중을 대표하는 상징성을 잘 보여주는 의례이다. 그런 만큼 길사의 절차도 매우 절제되고 엄숙하게 진행된다. 먼저 사당에서 신주를 모셔내는 출주례(出主禮)를 시작으로 각 제관들과 종손이 절하는 위치에 자리 잡으면 신주가 봉안되고 찬자가 초헌관에게 제사를 청하게 되는 것으로 길사가 시작된다. 먼저 신을 불러오는 강신례가 진행된다.
다음은 초헌례로 첫 번째 잔을 올리는 것으로 새로운 종손이 초헌관을 맡는다. 초헌관이 잔을 올리고 불천위와 4대조에 대한 독축과 5대조를 조매하는 의식이 함께 진행되므로 까다로운 절차와 시간이 소요된다.아헌례는 두 번째 잔을 올리는 순서로 길사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종부(宗婦)가 잔을 올리는 순서이다. 종부는 이날 활옷 예복에 수놓은 댕기를 곱고 화려하게 입고 화관을 쓴다. 이는 행운과 권위, 부부애, 영원한 삶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 다음은 종헌례로 세 번째 잔을 올리는 의식이다.
삼헌이 끝나면, 술잔에 첨작하는 첨작례(添酌禮), 신이 음식을 편하게 드실 수 있도록 하는 유식례(侑食禮), 음식을 다 드신 후 차를 올리는 진다례(進茶禮)가 진행 되고나면, 음식을 다 드셨기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내리는 낙시저(落匙箸)와 주독의 뚜껑을 닫는 합독(闔櫝)이 이어진다. 이어서 축관이 초헌관에게 “이성(利成)” 이라고 고하면 신주(神主)를 복위(復位)하고 축문은 불태운다. 그러면 모든 제관과 친척빈객(親戚賓客)이 재배(再拜)하고 철상(撤床)하면 음복례(飮福禮)를 끝으로 길사가 종료되고 종손과 종부는 공식적으로 종손과 종부는 문중을 대표하는 대표성과 권위, 나아가 책임과 의무가 주어진다.
안동시(권영세 시장)에서는 오늘날 사회 환경과 제도가 급속하게 변하면서 길사를 지내는 경우도 흔치 않을 때이지만 학봉종택 길사(2010.5.2.)와 퇴계종택 길사(2011.4.24.)에 이어 이번에 서애종택(충효당)에서 길사를 봉행하게 됨으로써 새로운 봉사손을 고유(告由)하는 길사(吉祀)가 각 문중(門中)의 종가(宗家)를 통해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음이 무척이나 다행스럽다고 밝히며, 유네스코에서 하회마을을 한국의 역사마을로 세계유산에 등재 하며 ‘살아 있는 유산(Living Heritage)’으로 평가한 가치가 후손들에게 잘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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