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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암 이삼만 선생은 조선말기 한양의 추사 김정희, 평양의 눌인 조광진과 함께 조선 3대 명필가로 불리지만, 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당시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하여 스스로 학문, 출사(교육), 저술 등 세 가지가 늦어졌다하여 후에 삼만(三晩)이라 개명하였다. 창암 이삼만 선생은 전주 자만동에서 출생, 옥류동, 상관 공기골 등에서 살았으며, 별세 후 구이 평촌리 하척마을에 모셔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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