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문화칼럼』개명시대 천안교육
김형태 | 기사입력 2014-10-02 11:12:53

[천안=김형태기자] 칼럼리스트 천안역사문화연구실 김성열 실장

삼남의 관문이라 불리어 온 천안지역의 개명개화 교육운동은 1901년부터 일어난다.

1903년 7월에 민족의 선각자 윤치호 박사가 천안 군수로 부임하고 1905년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개명 교육운동은 활발했다.

당시 천안군, 목천군, 직산군 내에는 서당이 79곳이 있어 서당 한문 선생 79명, 학생들이 456명이었다.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는 학생들은 양반자재들이었다.

1884년에 한글이 국문으로 발표되면서 언문이라 무시당한 우리글 한글을 상반 남녀 누구나 배울 수 있게 되었다. 1901년 직산군에서는 노승욱이 부교원으로 처음 임명 받았고, 민철훈 선생이 사립경위학교를 설립했다. 1907년 천안군은 안기선 군수, 이민창 선생이 영진학교를 설립했다. 목천군은 병천 지령리교회를 유중무 선생, 조인원 선생, 수신 장명학교는 김구웅 선생, 목천 보명학교는 목천 군수 남계석 선생, 이범신 선생, 박동희 선생, 조한묵 선생이 설립했다.

감리교 선교지역인 천안지방은 윌리암 테일러, 베어러, 사프, 스웨러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천안읍교회(서릿말), 병천 지령리교회(매봉), 수신 장명교회, 북면 매송교회, 성환 율금리교회, 입장교회, 양대교회에서, 성공회는 천안부대교회, 병천교회에 야학교, 주일학교, 여성학교를 운영하였다.

기독교는 나라를 빼앗긴 백성들이 글을 알지 못하여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문맹한 눈을 뜨게 하였다. 한글을 깨우치고 한글 성경을 읽고 가르치면서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 자주독립 역사를 알게 하였다. 한글 성경번역과 한글교육은 암울한 시대를 개화하는 민족 개명운동이었다.

그리고 지역 유지들이 앞장서 사립학교들을 다투어 일으켰다.

직산공립소학교(1901), 목천 홍호, 병천 진명, 수신 장명(1902), 성환 의성, 홍호, 천안 영진(1906), 천안 부대성공회, 직산 경위, 목천 보명(1907), 목천 병진, 병천 신명(1908), 천안 북일(1910), 목천 록농, 입장 양대 광명(1911) 그리고 천안공립보통학교(1911), 직산공립보통학교(1912), 목천보통학교(1913)가 설립되었다.

1914년 조선총독부가 천안교육 실상을 보고한 내용이다.

'일본인 공립심상소학교, 천안 2학급 학생 54명, 성환 1학급 학생 29명, 입장 1학급 일본 학생 18명, 교사가 각 2명', '조선인 일반 사립학교 2개교, 기독교사립학교 2개교, 학생 남자 102명, 여자 6명, 조선인 공립보통학교 천안, 성환, 입장 3개교 학생 남자 347명' 연령은 최고 21세부터 27세, 최소 8세부터 10세였고, 천안군 인구는 22,700명, 직산군 22,960명, 목천군 30,000명이었다.

그리고 외국인은 일본인 천안 434명, 중국인 37명, 직산군 일본인 408명, 중국인 86명, 영국인 2명, 목천군 일본인 44명, 중국인 17명이었다. 1914년 목천군, 직산군, 천안군이 통합되어 인구 75,660명 천안군 시대가 된다.

또한 연도별 지역인구를 살펴본다. ▲1955년 구 천안군 지역 49,000명, 구 목천군 지역 61,000명, 구 직산군 지역 46,000명 계 144,000명 ▲1980년 구 천안군 지역 120,000명, 구 목천군 지역 51,000명, 구 직산군 지역 58,000명 계 231,000명 ▲1990년 구 천안군 지역 211,000명, 구 목천군 지역 44,000명, 구 직산군 지역 57,000명 계 313,000명 ▲2000년 구 천안군 지역 285,000명, 구 목천군 지역 52,000명, 구 직산군 지역 79,000명 계 417,000명 ▲2010년 구 천안군 지역 421,000명, 구 목천군 지역 58,000명, 구 직산군 지역 89,000명 계 570,000명이 되었다. 2011년 천안시내 학교 현황은 초등학교 69개교, 중학교 28개교, 고등학교 21개교, 대학교 12개교로 집계되었다. ▲2011년 인구는 58만, 초등학생 43,268명, 중등학생 25,930명, 고등학생 24,678명, 대학생 74,618명이다.

1914년 천안, 직산, 목천 인구 75,000명이 100년 후 2011년 오늘 천안시 인구는 10배 60만 이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2013년은 천안시 승격(1963) 50주년을 기념했고, 태조 왕건 후삼국통일(936) 성업 1,077주년이기도 했다.

역동적으로 발전하는 天安의 역사 중심에서 1910년을 되돌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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