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이란 내 안에 존재하는 자유의지(意志)
이남열 | 기사입력 2024-02-05 15:28:28
[타임뉴스 충남권역 이남열 본부장]

[타임뉴스=이남열 Review]독일의 철학자 고트프리트 빌헬렘 라이프니츠(1646~1716년)는 자신의 저서 ‘변신론’을 통해 “신이 정말 전능하고 지선하다면 세계가 눈에 보이는 것처럼 악할 리가 없다"면서 '신의 존재'에 대해 부정하는 측면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가 주지하고자 하는 의도는 신(nature)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왜 이렇게 많은 악과 고통이 존재하며 이처럼 부조리한 세상에 '나는 왜 태어났는지 논리적 설명이 가능하거나 그 제약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의구를 제기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쪽이 우세하다.

반면 일반 대중도 아닌 라이프니츠조차 눈 앞에 보이는 최악의 현실을 방임하는 신에 대한 믿음은 흔들렸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라이프니츠가 살았던 17세기 유럽은, 가상의 신으로 불리는 카톨릭을 통치 수단으로 삼았던 신성로마제국과 이를 거부하는 개신교 사이에 쩐(Money)의 전쟁이 확대된 간악한 시대였다.

이들은 30년간 유럽 전체를 도가니로 몰아갔다. 전쟁 막바지에 다다르자 스페인과 독일은 몰락하였고 프랑스는 압도적으로 국력을 키워가면서 왕권주의는 절멸되고 자본과 금융시장은 유럽 전역을 장악하게 된다.

오늘날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UN 192개국을 장악한 자본의 게임은 이미 400여년 전 라이프니츠 시대부터 시작되었다는 평가는 정설이 되었다.

당시 중국 역시 명나라는 후금에 멸망하고 청나라가 건국되면서 조선에는 병자호란(1636년)의 주역 인조는 삼배구고도의 치욕을 겪게 된다.

같은 시기 타이밍을 놓치지 않은 유대계 동인도 회사는 전쟁 통에 국력을 키운 네델란드와 프랑스 왕실을 구워 삶아 오늘날 자본의 디스토피아 세상을 확고히 다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어쩌면 30년 전쟁사조차 유대계가 설립한 동인도 회사의 몫으로 지목하고 있는 화폐전쟁이 정곡을 찌른 실체일 수 있다는 의심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쑹홍빙 '화폐전쟁' 참조)

어찌되었든 예루살렘 히브리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유발하라리(1976~)의 저서 ‘사피엔스’는 인류 문명의 거대한 페러다임은 수렵문명과 농경문명의 분기점인 1만 년 전후로 소개하고 있다.(토머스 쿤이 최초일 듯한 Paradigm이란 이전 문명의 절멸 신문명의 태동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최소한 1만 년전 문명이 태동하기 전 '자연의 변화무쌍함에 의지하며 동물의 이동과 함께 생존했던 인류에게 신(자연)이란 언제나 믿고 의지할 수 있었던 영원 불변의 상수였기에 경이롭고 지선한 신비의 세계라는 점은 오늘날까지 논박없는 진리로 굳어져 있다. 설령 신으로 불리는 자연이 감당할 수 없는 재난으로 해를 끼칠지언정 그 누구도 신(자연)을 탓하는 것만은 금기시한 것은 사실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여전히 '알라'를 유일신으로 믿는 약20억 명의 이슬람교는 1만년 전의 전통인 ‘살라트’ 경배(敬拜)를 해뜨기 전, 아침, 점심, 해지고 난 후, 밤 등 하루 5번씩 메카(성지)를 향해 절을 한다는 것만 보아도 신에 대한 경이(驚異)로움을 찬양하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괴이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메카는 사우디아라비아 내에 있는 도시 이름이며 그 도시에 있는 성지를 말한다.)

그러던 중 인류의 일부(자칭 아는 척하는)는 고달픈 수렵생활 보다 좀 더 움직이지 않고 굶지 않을 수 있는 궁리속에 결국 공동체를 선택하고 정착형 농경문명에 안주하게 된다. 초기만해도 장차 벌어질 재앙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위계(位階)부터 배우면서 자신들보다 더 깨여 있다는 정적 제거에 그들은 나섰다.

정적제거에 성공한 지도층들은 자신의 권위를 보다 신격화할 수 있도록 또 하나의 압제 수단으로 법을 제정하면서 제도적인 힘이 모아지자 세력을 규합하면서 더욱 잔인하고 강력한 힘을 길렀으며 심심하면 대중을 소집해 이웃 공동체 약탈 전쟁에 나서기도 했다. 한발 더 나아간 이들은 위장술로 치장해 기습과 모략을 습득하게 되었고 귀족이라는 권위를 늘려 나가며 영구 집권을 강화한다.

본디 이 정체(正體)는 속임수다. 왕권과 귀족으로부터 시작된 인류의 기망행위는 오늘날 임포스터(impostor 협잡, 사기술)의 기원이 된다. 변신을 무기로 삼은 이들은 페르소나(가면)를 바꾸어 가며 신화를 가공하였고 나라를 건국할 때마다 창건 신화는 조작되기 일쑤였다.

이때부터 자연(신)은 천대 받기 시작했고 대중과 유사한 통치자는 신으로 숭배 받았다. ‘사피엔스’가 의미하는 바는 오늘날 인류의 고통은 안도(安道)를 지향하는 인간의 탐욕에서 빗어낸 사변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모두 내 탓'이라는 옛 격언은 선대가 남긴 우리의 업보라는 의미로도 이해된다.

그러면서 일부 선각자는 가공의 신(카톨릭, 개신교, 이슬람 등)을 탈피해 진정한 신을 갈구하게 되었고 그 단초는 각 개별자의 비극(悲劇)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포착하게 된다.

당시 니할리즘(허무주의)을 신봉했던 쇼펜하우어(1788~1860년)를 시작으로 19세기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년)에 이르러 '3000년 전 조로아스트라교의 창시자 차라투스트라(생몰년 미상)의 위버맨쉬(Overman)'를 찾아낸 그는 자신의 역작 '권력의지'를 통해 개별자의 '자유의지'만이 진리를 찾아갈 수 있는 유일한 힘이라고 강조한다.

그가 말하는 '힘의 의지(意志)'란 타인을 위해 드러낼 수는 있어도 절대로 나눌 수는 없다. 고 한다. 오롯이 각 개인이 기질 수 있는 무기라는 것을 천명한 그는 자신 외 외부의 압력이나 공동체로부터 가해지는 권위적 상징조차 그리고 이타적 사고에서 밀려올 수 있는 숱한 횡액마저 자신의 것으로 소화할 수 있는 암흑의 블랙홀 같은 '자유 의지'만이 이 세계가 던져주는 부조리에 기투(企投)할 수 있는 긍정의 힘이라는 것을 주장했다.

그렇다. 우리는 스스로 선택하거나 특정하지 아니하였는데도 알지 못하는 사이 '어 내가 왜'라며 고스란히 피해를 감당할 때가 있다. 정말 누가 보아도 부조리하고 상식을 넘어서는 사건부터, 이웃 나라 전쟁 때문에 자신의 일자리를 잃어버리지 않나. 이제 지나갔나 하고 생각하는 순간 돌아보면 불화의 신 에리스는 여전히 앉아 음흉하게 웃는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랄 때가 누구에게나 있을 법하다.

어쩔 땐 가면을 쓴 상대의 속이 뻔히 보이는데도 그 실체를 드러낼 수 없고, 설령 밝히고자 한다 해도 시간과 공간에 얽힌 관계를 상기하지 않을 수 없으며, 선듯 나설까 하다가도 위계에 종속된 권위로부터 민중의 적으로 몰리는 것을 내심 두려워 나서지 못할 때도 있다. 오늘날에는 없으면 안될 Money에게 자신의 의지까지 빼앗기며 흔들거리는 현실을 반추(反芻)해 보면 자신이 같잖을 번번히 발생한다.

니체는 이와 같은 회의조차 이 세계가 주는 자연의 일부라며 수용하라고 한다. 그 선택 또한 너와 동족인 선대의 선택이였는 바 '신(자연)을 탓할 것은 없다'라는 주장으로 들린다.

그가 말하는 신(자연)은 "자신의 창작물인 인간을 만들면서 자유의지를 불어 넣었음에도 악을 행할 능력이 없는 세계를 창조해낼 수 있거나 또는 두려워해야 하거나 유혹 당할 일이 없으면서도 '두려움이나 유혹을 극복하고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 보일 수 있는 세계'는 가히 창조할 수 없다"는 논지를 펼쳤다.

그렇다면 우리 개인들은 1만 년 전 이타적인 수렵 문명이 그립다고 이제와서 돌아갈 수는 없다. 반면 역사에 편승한 자본과 권력이란 악의 무리들은 나날이 강성해지고 있는 기로에서 설령 내게 주어진 자유의지를 버린다면 과연 행복만은 보장해 줄 것인가! 라는 것은 그들도 장담할 수 없다. 이와 달리 신도 뺏어갈 수 없는 나의 '자유의지'를 선택해 소멸의 순간만이라도 여한이 남지 않는 그런 아웃사이더로 남고자 한다면 넉넉한 행복은 보장 받을 수 없을지언정 '가히 후회없이 살았다'라고 자부할 수 있지 않을까 판단된다.

서두에 신(자연)의 간섭을 호소하던 라이프리츠조차 ’이 세계는 존재로부터의 탈출이며 완전한 소멸을 의미하는 종말을 위해 완벽히 (아귀가)맞추어져 있다‘라고 했다. 그의 말마따나 '내가 갖고 있는 자유의지를 등가가치'에 빗댄다면 "이 세계에 속한 나는 '나란 존재의 탈출과 나의 완전한 소멸'을 위해 그 경이로운 신(자연)이 내 안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철썩같이 믿을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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