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中企 기술탈취 피해 197억원…3건중 1건은 손놓고 당했다
침해된 기술·정보 중 소프트웨어·프로그래밍파일이 39% 차지 대기업과 특허 소송은 패소율 더 높아…제도 정비에 속도날 듯
김동진 | 기사입력 2023-09-04 09:29:31
[영양타임뉴스] 김동진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대기업의 기술 탈취를 '중범죄'로 규정하면서 관련 제도 정비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관측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주재한 '스타트업 코리아 전략회의'에서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탈취를 중범죄로 규정하며 단호하게 사법 처리하겠다고 밝힌 뒤 중소기업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신속하게 구제받고 보복당하지 않도록 국가가 지켜주겠다고 강조했다.

◇ 지난해 中企 기술 침해 피해액, 전년 대비 늘어

4일 중소벤처기업부와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의 '2023 중소기업 기술 보호 수준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중소기업에 대한 기술 침해가 발생했거나 이전에 발생한 피해를 인지한 사례는 총 18건, 피해액은 197억원으로 집계됐다.

2021년 피해 건수(33건) 대비 절반 가까이 줄었지만, 피해액(189억4천만원)은 늘어난 수치다.

침해된 기술이나 경영상의 정보는 '소프트웨어 및 프로그래밍 파일'이라는 응답이 38.5%로 가장 높았다.

중소기업이 기술 침해를 경험한 이후 내부적으로 별도의 조치를 하지 않은 비율은 8.3%, 외부적으로 별도 조치를 안 한 비율은 33.3%에 달했다.

해외에서 기술 침해를 당한 경험 이후 별도의 조치를 하지 않은 비율은 50.0%로 더 높았다.

해외 기반의 중소기업 둘 중 하나, 국내 기반의 중소기업 셋 중 하나는 기술 탈취 피해를 인지했음에도 손을 놓고 당했던 셈이다.

스타트업을 비롯한 중소기업은 인력이나 자금이 현격히 부족한 탓에 대기업이 마음먹고 기술을 탈취하려고 하면 이를 막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생태계 민간 지원기관인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지난 5월 발간한 이슈 페이퍼는 "대기업은 하도급 관계나 자본력의 차이를 바탕으로 기술 탈취가 용이하다"며 "반면 스타트업은 침해 사실 및 손해액 산정 관련 입증이 용이치 않아 대기업과의 분쟁 피해가 스타트업 간 기술 탈취 피해보다 더 크게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스타트업은 기술 탈취가 이뤄진 이후의 대응을 고려하는 것보다 기술 탈취가 이뤄지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11년째 카카오[035720]와 카카오톡 관련 특허 분쟁을 벌이는 엠아이유 오준수 의장은 "대한민국에서 대기업이 특허권자의 서비스 원천 기술을 허락 없이 함부로 가져다 쓰는 풍조가 만연하다"며 "돈 있는 힘의 세력이나 대기업 집단은 특허 무효(소멸) 제도를 악용해 풋내기 스타트업이나 힘이 약한 개인 특허권자를 상대로 마구 기술 탈취를 벌여온 지 오래"라고 주장했다.

오 의장은 "특허 무효화가 매우 쉬운 현행 제도로 개인의 발명 특허나 중소기업의 지식재산권이 도용될 수밖에 없는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 기술 탈취 문제 해결에 정부·국회 합심

스타트업 단체인 코리아스타트업포럼에 따르면 현재 대기업의 스타트업 기술·서비스 탈취 문제로 갈등을 겪는 사례는 교보문고와 텍스처(기록·수집된 문장 데이터를 기반으로 콘텐츠를 추천·유통하는 서비스), 농협경제지주와 키우소(목장 운영을 위해 필요한 기록 관리를 돕는 애플리케이션 서비스), LG생활건강[051900]과 프링커코리아(화장품 염료를 이용해 피부에 원하는 대로 도안을 그려주는 휴대용 타투 프린터기), 카카오헬스케어·카카오브레인과 닥터다이어리(연속혈당측정기와 모바일 앱 연동 서비스), 신한카드·BC카드와 팍스모네(계좌에 잔액이 없이도 신용카드를 통해 개인 간 송금이 가능한 서비스) 등이다.

올해 초 대기업인 롯데헬스케어와 스타트업인 알고케어 간 영양제 디스펜서(정량 공급기) 기술 분쟁 사건이 중기부의 조정을 통해 롯데헬스케어의 사업 철수로 마무리됐지만, 실제 특허 소송전에서 중소기업의 패소율은 높은 편이다.

특허청에 따르면 지난해 대·중소기업 간 특허 심판 심결 16건 가운데 중소기업은 9건 패소해 패소율이 56%에 달했다.

중소기업의 특허 심판 패소율은 2018년 50%, 2019년 60%, 2020년 72%, 2021년 75%까지 높아졌다가 지난해 하락 전환했지만, 여전히 승소율보다 패소율이 더 높은 실정이다.

기술 침해에 따른 피해를 구제받는 일이 그만큼 어렵다는 의미다.

이는 근본적으로 특허 심판·소송에서 침해 사실과 손해액 산정에 대한 증거의 대부분을 침해자인 대기업이 보유하고 있어 증거 수집의 어려움으로 침해 입증이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김정호 의원은 2020년 8월 증거를 상호공개하도록 하는 미국의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을 위한 특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김 의원은 "특허 침해의 특성상 침해를 입증할 증거를 확보하기 어려워 결국 처벌이 솜방망이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맹점이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침해를 양산하는 꼴"이라고 법안 발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 밖에 국민의힘 김성원 의원과 민주당 김용민·김한정 의원은 대기업의 스타트업 기술 탈취를 예방하기 위해 현행 3배인 손해배상액 상한을 5∼10배로 늘리는 법안을 잇달아 발의했다.

정부도 기술 탈취에 의한 중소기업의 피해 구제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현행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강화에 매우 적극적이다.

국회입법조사처 박재영 입법조사관은 "입증 책임의 전환 규정을 현행 법률에 도입·확대하는 것은 기술 탈취 피해 기업이 가해 기업 대비 정보와 힘의 절대적 불균형에 따른 계층적 불리함이 매우 크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그 논의의 필요성이 충분하다"면서도 "법률 체계를 고려한 합리적 접근이 요구된다"는 견해를 밝혔다.

박 조사관은 또 기술 탈취 사건에 대한 구제 창구 일원화, 기술 탈취 손해액을 산정하는 명확한 기준 정립, 기술 탈취를 미연에 방지하는 중소기업의 자체적인 기술 보호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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