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하니움 벽면에 서각
백범이 서거 60주년에 화순서 화려하게 부활하다
신인균 | 기사입력 2009-08-12 07:35:43


백범(白凡) 김구(金九) 선생이 화순에서 서거 60년 만에 화려하게 부활한다.

화순군(군수 전완준)은 10일 하니움 문화스포츠센터 지하 2층 대강당 입구 벽면에 백범의 ‘나의 소원’ 가운데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를 초록(抄錄), 서각 작품으로 장식했다.

서각의 크기도 동양 최대로 가로 20m, 세로 2.4m며 모두 460자의 글자가 새겨진다. 글자의 크기는 30cm에서 최대 1m까지다.

글씨는 화순 출신 정영채 선생이 3개월간 심혈을 기울여 쓴 것으로 화순군에 기증한 것이다.

오는 8월말 하니움이 완공되면 이 서각은 하니움의 명성을 전국에 떨칠 명작으로 평가받을 것이 확실하다는 것. 하니움 문화스포츠센터가 화순의 랜드마크로,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서각이 하니움의 품격을 빛낼 명작으로 전국에서 수많은 서예가는 물론 각 분야의 문화예술인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올해는 백범 김구(1876~1949) 선생이 서거한지 60주년 되는 해로 화순에서 하니움 개관과 함께 그가 그토록 원했던 문화보국(文化保國)의 꿈을 이루게 됐다.



백범이 화순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898년 그의 나이 22세 때. 1895년 일본이 명성황후를 시해한 을미사변을 일으키자 백범은 김구 라는 본명을 버리고 김창수로 개명, 일본 육군 중위 쓰치다(土田讓亮)를 살해하고 “국모의 원수를 갚으려고 이 왜를 죽였노라”고 포고문을 붙였다.

그 해 체포되어 옥살이를 하던 중 1897년 사형에 처한다는 판결을 받기도 했으나 “김창수는 국모의 원수를 갚은 사람이므로 특사한다”는 고종 황제의 특사령이 내려졌다.



그러나 일본 공사의 압력으로 출옥하지 못하자 감옥 바닥에 깐 박석을 들쳐 내고 땅을 파서 탈옥에 성공한다.

백범은 그 길로 남도에 내려오게 된다. 화순 · 동복 등지에서 1898년의 봄과 여름을 지낸 뒤 늦가을에 공주 마곡사로 들어가 승려생활을 하게 된다.



침략국의 군인을 죽인 혐의로 사형 선고까지 받으며 피신 생활을 위해 너릿재를 넘어 화순 땅을 밟았던 백범이 111년 만에 ‘문화보국’을 원하는 화순 군민들의 열화 같은 염원으로 찬란한 꽃을 피우게 됐다.

화순군은 올해 10월 바로 그 하니움에서 화순풍류문화큰잔치를 열어 주한외교사절을 초청, 대한민국이 아름다운 전통과 민족문화를 꽃피우고 있는 문화국가임을 세계 만방에 떨친다.




광역시 충청북도충청남도경상북도전라북도전라남도
서울타임뉴스인천타임뉴스대전타임뉴스대구타임뉴스광주타임뉴스울산타임뉴스부산타임뉴스제주타임뉴스세종타임뉴스태안타임뉴스안동타임뉴스의성타임뉴스군위타임뉴스영양타임뉴스울진타임뉴스문경타임뉴스상주타임뉴스예천타임뉴스영주타임뉴스청송타임뉴스경주타임뉴스영덕타임뉴스구미타임뉴스김천타임뉴스칠곡타임뉴스봉화타임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