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타임뉴스=이승근기자] 고령군(군수 곽용환) 대가야박물관은 2014년 1월 21일(화)부터 11월 30일(일)까지 기획특별전 “대가야 왕릉王陵의 출현出現-지산동 73호분-”을 개막할 예정이다.
이번 전시는 최근 발굴 조사된 지산동 73호분이 지산동고분군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최초의 왕릉으로, 대가야 왕릉의 출현을 재조명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고령은 지금으로부터 1,600여 년 전 우리나라 고대사의 한 축을 이루었던 대가야의 옛 도읍지였다. 고령읍을 둘러싸고 있는 주산의 능선 위에는 대가야시대의 왕과 왕족, 귀족들의 무덤 700여기가 줄지어 늘어서서 장관을 이루고 있다.
바로 ‘고령 지산동고분군’이다. 이 고분군은 대가야 최대의 중심 고분으로 무덤의 숫자와 규모, 껴묻거리의 우수성에서 가야지역을 대표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에는 그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와 진정성·완전성을 인정받아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었다. 서기 400년을 전후하여 고구려의 남진(南進)으로 금관가야가 몰락하지만, 대가야는 야로지역의 철산지를 확보하면서 강력한 무력과 농업생산력을 발전시켜, 가야 사회를 주도하는 대(大)가야로 성장하였다.
지산동고분군은 대가야가 고대국가로 발전하는 400년경부터 562년 멸망에 이르기까지 만들어져, 대가야의 성장과 발전을 오롯이 담고 있는 상징적인 유적이다.
지난 2007∼8년에 걸쳐 발굴조사 된 지산동 73호분은 무덤 내부가 나무덧널로 이뤄진 대형 봉토고분으로 확인되었다. 이 고분은 지산동고분군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최초의 왕릉으로, 대가야에서 왕릉이 본격적으로 출현하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또한 삼국과 구별되는 대가야만의 독특한 문화가 꽃피기 시작하였음을 보여준다.
이번 기획특별전에서는 400년 경 대가야 왕릉의 출현기에 만들어진 ‘최초의 대가야 왕릉’인 지산동 73호분을 발굴 당시의 모습으로 재현하였다.
이를 통해 출현기의 대가야 왕릉은 어떤 모습이며, 그 속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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