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휘날리는 1930년생 열혈청년들
태극모양 두건에 태극기를 몸에 두른 태극인간
임희인 | 기사입력 2009-10-21 09:32:58

잠실 3동 주민센터 앞에 애국심이 투철한 할아버지 군단이 나타났다.



어깨띠를 두른 백발의 할아버지, 피켓을 들은 허리 구부정한 할아버지, 말끔한 정장에 베레모로 포인트를 준 멋쟁이 할아버지 등 총 40명이 ‘태극기를 달자’며 한 곳에 모였다. 이들의 외관은 가지각색이지만 애국심만큼은 투철한 평균 나이 70세의 어르신들. 태극기사랑이 각별해 태극두건과 대형태극기를 몸에 두른 1930년 생 열혈청년들이다.



이들은 자칭 잠실 5단지의 태극기 홍보대사다. 주변을 돌고 돌던 중 유동인구가 많은 지점에 멈춰 서 지나가는 주민들을 향해 목청껏 외친다“국기사랑, 나라사랑, 태극기를 게양 합시다”라고. 한손에는 태극기의 명칭과 유래가 담긴 전단지, 한손에는 태극스티커를 들었다.



지나가는 초등학생을 붙잡고, “학생, 가방에 태극기 스티커 붙이자! 태극기의 흰색바탕은 백의민족 순결성을 상징하고, 태극문양은..” 이라며 거침없는 입담으로 태극기에 대해 설명해준다. 해박한 지식은 물론이요, 전문가 못지않은 말솜씨에 열정까지 더하니 20대 청춘이 부럽지 않아 보인다.



물론 오래 서 있자니 다리도 아프고, 구호를 외치고 있으니 목도 금방 쉰단다. 하지만 자신들이 벌이는 캠페인이 도미노현상을 일으켜 전국적인 태극기 게양 열풍이 부는 상상을 하면 오히려 힘이 난단다.



발걸음을 재촉하던 한 여성이 지나가자 “아가씨, 태극기에 대해 잘 알아요?”하며 전단지 한 장 든 손을 내민다. 들은 채도 안하든 태도에 순간 손이 민망해졌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다가가 결국엔 전단지를 손에 꼭 쥐어주고 만다. “이럴 때는 속상하죠. 하지만 이왕 시작한 거 끈질기게 해서 주민들이 태극기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면 뿌듯하지 않겠어요? 이 정도는 각오했어요.”



잠실 5단지 경로당 회원으로 모이게 된 할아버지들의 인연은 남다르다. 담소나 나누는 일반적인 모임이 아닌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뭔가 해보겠다는 의지가 가득한 나름 탄탄한 할아버지 조직인 것. 소싯적 삶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다 보니 할아버지들 스스로 애국심이 강하다는 걸 깨닫게 됐단다. 대부분이 한국전쟁을 경험한 1930년대 생이어서 더 그렇다.



태극기로 도배된 경로당 내부는 어르신들의 애국심을 대변해주는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이들은 국가사랑의 일환으로 스스로가 주최가 되어 바른 사회를 만들어 봐야겠다며 머리를 맞댔다. 현재 실시중인 <국․기․예>캠페인은 이때 나온 아이디어.



캠페인의 선봉에 선 박철 할아버지(70․경로당회장)는 육군 대령출신에 전 국방대학교 교수로도 재직했던 만큼 안보의식이나 국가관에 대한 소신이 남다르다. “나라에 충성하는 방법은 별거 없어요. 마음 하나면 충분하죠. 가장 쉬운 방법이요? 국경일에 태극기 잘 달고, 나라사랑하는 마음가짐을 평상시에도 꾸준히 갖고 있으면 그게 최고죠.” 이렇게 말하는 박 할아버지의 와이셔츠 칼라에 붙여진 태극기스티커가 유독 눈에 크게 띄었다.



이들의 ‘나라사랑’을 몸소 실천하게 된 첫 사례인 <국․기․예> 캠페인은 1단계 국기사랑․나라사랑, 2단계 기초질서준수, 3단계 예의범절의 앞 글자를 따서 지어진 이름. 각 단계별 캠페인을 3분기로 나누어 순환시키면서 수년간 지속적으로 실시할 예정이란다.



젊었을 때 UN산하기관인 세계대학봉사회에 재직했던 최석동 할아버지(75)는 1단계로 태극기 캠페인을 실시하자고 적극 추천했던 주인공이다. 업무 특성상 각 나라의 학생들과 대화할 기회가 많았다는 최 할아버지는 한국학생들의 태극기에 대한 무지함에 혀를 찼었다고 회고했다.



“일본, 미국, 필리핀 등 외국인들은 자 국기(自國旗])에 대해 술술 설명하는데,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태극기에 대해 물어보면...묵묵부답(黙黙不答)이었다”고 한다. 기가 막힌 사실은, 태극기는 모르면서 일장기나, 성조기에 대해선 해박하다는 것이다. “한번은 대학신문 편집국장들을 위한 세미나에 참석했었죠. 당시 그 자리는 각 대학의 톱이라 불리는 학생 90명이 참가했습니다.” 그때 최 할아버지는 익명으로 백지에 태극기를 그리고 설명해보자는 제안을 했다. 하지만 결과는 형편없었다. 소위 엘리트라 불리는 대학생마저도 이런 형편이니 태극기 교육이 절실하게 느껴진 것은 당연할지도.



옆에 있던 최정운 할아버지(74)도 맞장구를 치며 한 마디 거들었다. “과거 미술시간엔 태극문양과 건(乾), 곤(坤), 감(坎), 리(離) 4괘로 이뤄진 태극기를 그리고 그에 따른 숙제와 시험을 본 기억이 난다”며 “이것이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태극기를 자신 있게 그릴 수 있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곧이어 “지금도 교과서 첫 페이지를 넘기면 큼지막한 태극기가 그려져 있지만 이를 유심히 보는 학생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라며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고등학교 국민윤리 교사였던 최 할아버지의 안타까움이 묻어있었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중 일부는 한 번도 국경일에 국기 게양을 하지 않았고 태극기를 정확하게 그릴 수 있는 지에 대해 21.6%가 ‘모른다’는 결과가 나왔다. 얼마 전 개천절에도 태극기를 게양한 집이 많지 않아 씁쓸한 풍경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태극기 홍보를 위해 자발적으로 나선 잠실 5단지 경로당원들의 <국․기․예> 캠페인은 민족과 국가에 대한 자부심을 고취시킬 수 있는 도화선이 될 만하다. 이달휴 할아버지는(77) “예전에는 길거리에서도 애국가가 들렸고 태극기도 흔히 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국경일에도 태극기를 게양한다는 사실이 어색한 일이 돼 버렸다”면서 “축구시합 때 응원도구로만 사용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이어 그는 “나라의 소중함을 일깨울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 태극기”라고 강조하면서 “태극기를 게양할 수 있는 자연스런 분위기를 유도해 나가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단결하는 국민이야말로 가장 큰 국력인 만큼 이번 캠페인에 대한 관․학의 기대도 크다. 각별한 관심으로 각종 후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 김용화 동장(잠실3)은 “나라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이 바로 애국심이자 애국자인 것”이라며 “이번 캠페인이 범 주민 운동으로 확산되도록 지속적인 홍보 및 참여를 유도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신천초등학교에서는 가정통신문을 통한 가정교육을 유도하고 학교 수업을 병행 실시하기로 협조했다.



9월에 첫 발을 내딛은 제1단계 국기사랑, 나라사랑 캠페인은 오는 12월까지 진행되며 10월 21일 10시에 잠실 5단지가 또 한번 태극물결로 물들여진다. 집결 장소는 잠실 5단지 경로당 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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