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지극히 낮추고, 존귀함, 겸손, 공손, 어짊, 후덕으로 살았던 정명공주
<화정-정명공주와 광해군의 정치 기술>(리베르) 저자 박찬영 출간
김수종 | 기사입력 2018-01-08 14:17:04

[전남타임뉴스=김수종] “내가 원하건대 너희가 다른 사람의 허물을 들었을 때 마치 부모의 이름을 들었을 때처럼 귀로만 듣고 입으로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의 장점과 단점을 입에 올리고 정치와 법령을 망령되이 시비하는 것을 나는 가장 싫어한다. 내 자손들이 차라리 죽을지언정 경박하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말이 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숙종 8년 정명공주가 80세가 되던 해에 막내아들 홍만회에게 내린 글이다. 부모 이름 석 자는 음을 하나하나 새길지언정 자식이 직접 거론하지 않는 것이 도리다. 그와 마찬가지로 남의 허물도 삼가 입에 올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정명공주의 원칙이었다.

정명공주(1603~1685)와 거의 동시대를 함께했던 우암 송시열(1607~1689)은 정명공주의 죽음을 누구보다도 애석해했다. 송시열은 정명공주의 묘지에 이렇게 썼다. “공주는 부인의 존귀함에 걸맞게 겸손하고 공손하며 어질고 후덕해 오복을 향유했다.” 송시열의 묘지 글대로라면 정명공주에게 오복은 존귀함, 겸손, 공손, 어짊, 후덕이었다.

조선 선조임금의 딸인 정명공주는 평생 화려한 정치또는 빛나는 다스림이라는 뜻인 화정(華政)’을 좌우명으로 삼고 평생을 살았다. <화정-정명공주와 광해군의 정치 기술>(리베르)에서는 다시 시대의 화두로 떠오른 화정을 말하고 있다.

<화정-정명공주와 광해군의 정치 기술>은 정명공주의 빛나는 다스림으로 비춰 본 17세기 조선사를 다룬 책이다. 사실 세상에 선과 악의 싸움은 드물다. 선과 선의 싸움이 대부분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게 자신을 향한 빛나는 다스림이다.

17세기 조선사는 을 죽이는 피로 물든 역사다. 특히 광해군 시대의 역사는 더욱 그러하다. 광해군은 우리에게 어떤 이미지로 다가올까. 탁월한 외교 정책을 펴고 대동법을 시행한 현군(賢君)일까, 아니면 어머니인 인목대비를 폐하고 동생인 영창대군을 죽인 혼군(昏君)일까.

<화정-정명공주와 광해군의 정치 기술>은 어느 한쪽으로만 보려는 기존의 편견을 버리고 당대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꿰뚫어 본다. 광해군이란 프리즘만으로 역사를 바라볼 때 우리는 시각의 사각지대에 빠진다.

이 책은 이러한 사각지대를 광해군의 이복 여동생인 정명공주를 통해 다시 비추어 본다. 정명공주는 선조 대에서 숙종 대까지 당시로서는 드물게 83세까지 장수했다. 정명공주의 삶은 격랑이 휘몰아친 17세기 조선의 단면도다. 임진왜란 직후에 태어난 정명공주는 조선사의 5분의 1을 경험했다.

정치투쟁의 비열함을 온몸으로 느꼈고 죽음에서 부활하다시피 살아났다. 세상사 가운데 정치가 아닌 게 있을까. 인간은 원초적으로 갈등 관계에 놓인다. 인간은 오해와 편견 덩어리다. 세상사는 갈등 그 자체다. <화정-정명공주와 광해군의 정치 기술>은 이 갈등을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공생 코드인 관용, 친절, 배려에 관한 책이다.

책을 통해 공생하는 지혜를 찾을 수 있다. 사실 화려한 정치에는 일신의 영달을 추구하는 모습이 담겨 있고, ‘빛나는 다스림에는 자기 수양과 애민(愛民)의 의미가 녹아 있다. 정명공주는 냉엄한 정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빛나게 다스리는 길을 선택했다.

<화정-정명공주와 광해군의 정치 기술>은 반목과 갈등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공생하는 지혜를 알려주고 있다. 정명공주는 숱한 무고를 어떻게 넘었을까. 정명공주는 바로 맞대응하지 않았다. 바로 반응을 보였다면 제 발 저려 그런다는 의심을 받았을 것이다.

정명공주는 서궁에 유폐되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숨죽이고 있었다. 움직이면 공격의 타깃이 된다는 것을 숱한 굴곡의 시기를 거치면서 깨달았다. 때로는 숨죽이고 있는 것, 다른 사람이 움직이도록 하는 것, 그것이 서궁에서 체득한 빛나는 다스림이라는 정치기술이 아니었을까.

실제로 위험천만한 시기에 정명공주를 지켜 준 사람은 죽은 어머니도 남편도 아니었다. 정명공주를 살린 것은 반정 공신이다. 정명공주는 어떤 말이나 행위도 없이 반정 공신을 움직였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과 타인을 다스리는 법을 알고 있었다.

소현세자는 당시 시대가 필요로 했던 조건을 두루 갖추었던 인물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정치 감각이 있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가령 소현세자가 청에서 가져온 천문학 서적과 지구의 등을 인조에게 보여 준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인조가 청으로 말미암아 어떤 고난을 겪었는지 알고 있는 소현세자가 청에서 가져온 물건을 내보인 것은 성급한 행동이었다. 정명공주가 소현세자의 입장에 있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아마도 자신의 속을 감추고 혼자 꿈을 키웠을 것이다. 꿈은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을 때 이루어진다.

정명공주는 상대의 치명적인 약점이나 상대가 싫어하는 점을 거론하는 것을 금기로 여겼다. 소현세자가 정명공주의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면 자연스럽게 인조에 이어 왕위에 올랐을지도 모른다. 소현세자는 자기 생각을 드러내서 인조를 분노하게 했다.

섣불리 움직이면 표적이 된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과 함께하고 있을 때 움직여야 한다. 그때조차도 자신을 노출하면 안 된다. 언제 동지가 적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권력의 세계에서는 아버지조차도 믿을 수 없다.

소현세자는 결국 인조의 표적이 되어 이 세상과 결별하게 되었다. ‘화정은 어느 한쪽으로만 보려는 기존의 편견을 버리고 당대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꿰뚫어 본다. 광해군이란 프리즘만으로 역사를 바라볼 때 우리는 시각의 사각지대에 빠진다. 인간은 원초적으로 갈등 관계에 놓인다.

인간은 오해와 편견 덩어리다. 세상사는 갈등 그 자체다. ‘화정은 이 갈등을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공생 코드인 관용, 친절, 배려에 관한 책이다. 화정은 화려한 정치혹은 빛나는 다스림으로 볼 수 있다. ‘화려한 정치에는 일신의 영달을 추구하는 모습이 담겨 있고, ‘빛나는 다스림에는 자기 수양과 애민의 의미가 녹아 있다.

1602713일 선조는 51세의 나이에 19세의 인목대비에게 새장가를 들었다. 재위 35년의 일이다. 인목대비와 함께하면서 머리를 늘 짓누르던 전쟁의 기억은 안개처럼 사라져 갔다. 열 달 후인 1603519일 정릉동 행궁에는 갑자기 적막이 감돌았다.

얼마 있지 않아 수많은 눈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기씨의 울음소리가 울려 펴졌다. 억눌려 있던 소리가 터지며 축복과 기대와 설렘이 행궁을 가득 메웠다. 행궁 한편에서는 광해군이 이 소식을 듣고 불안에 떨었다. 광해군은 선조의 눈치를 보느라 성격이 우유부단해졌다.

또한 어쩔 수 없는 상황은 극단적으로 해결하려 했다. 자아를 불안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이 현실 왜곡 전략은 광해군 정권에 영향을 미쳤다. 억압의 잘못된 분출, 그것이 광해군 정권의 한계였다. 광해군도 명분과 본심 사이에서 숱한 고민을 했다.

광해군의 본심을 누구보다 잘 읽은 이이첨은 광해군의 복수심에 불을 붙였다. 하지만 누군가가 내게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서, 무분별하게 복수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일까? 정명공주의 삶 역시 방어 기제를 일으켜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힘든 사건의 연속이었다.

이복 오빠의 손에 의해 서궁에 유폐되어 죽음의 고비를 넘겼고, 동생 영창대군의 죽음을 무력하게 지켜보아야 했다. 조카 인조에게 저주 의혹을 받아 죽음의 문턱을 숱하게 오르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정명공주는 광해군과는 달랐다.

서궁에 유폐되었을 때 이미 화정(華政)’을 쓰며 자신을 다스렸다. 자연스럽게 주변을 움직여 주변은 물론 자신도 지켰다. ‘화정을 비롯한 여러 서예 작품을 남긴 정명공주는 조선 최고의 여성서예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화정은 글자 하나의 사방이 각각 73cm나 되는 대작이다. 누가 보아도 선이 굵고 힘이 넘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미술사가들도 이런 큰 글씨는 남자의 힘으로도 감당하기 힘든데, 연약한 여성의 체력으로 이런 글을 썼다는 것은 중국에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놀라운 일이다. 결구(結構), 필력(筆力), 운필(運筆)이 어느 하나 머뭇거림 없이 당당하다. 타고난 명필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라고 평했다.

<화정-정명공주와 광해군의 정치 기술>의 저자 박찬영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를 졸업하고 중앙일보 기자,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한국판의 편집부장을 지냈다. 현재 리베르의 대표이사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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