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건전한 정신을 위하여 바르게 보고 생각하고 말하고 쓰는 교육이 절대적으로 필요
<피로사회>(문학과 지성사) 저자 한병철, 역자 김태환
김수종 | 기사입력 2017-07-04 10:49:06

[서울타임뉴스=김수종] 철학자 한병철 교수는 <피로사회>의 서문에서 한국 사회 역시 성과사회이고 그에 따른 사회적 폐해와 정신 질환 등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적어도 그 점에서는 서구 사회와 전혀 다르지 않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자기를 착취한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즉각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서양은 물론 한국 사회 내부에도 존재하는 피로사회에 대한 전반적인 진단을 하고 있다.

피로사회는 자기 착취의 사회다. 피로사회에서 현대인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이다.” 독일 최고 권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2010102일자에 카를스루에 조형예술대학의 한병철 교수의 철학적 업적을 조명하는 특집 기사를 내보냈다.

이 기사에서 한병철 교수는 새로운 종류의 문화 비판의 개척자로 묘사되고 있다. 문화 비판은 니체, 프로이트, 아도르노, 벤야민 등 독일 사상의 중요한 전통을 이루고 있으며, 따라서 독일의 최고 권위지가 한국 출신의 철학자에게 문화 비판의 혁신자라라는 의미를 부여한 것은 범상하게 넘겨볼 일이 아니다.

위 기사의 필자인 마르크 지몬스는 지금까지 중국, 일본, 한국의 동아시아 국가들이 경제적, 기술적으로 인상적인 업적을 보여주었을지 모르지만 서양에 대해 거의 아무런 사상적 영향도 주지 못해왔다고 지적하면서, 한병철이 이러한 사상적 침묵을 깨고 동아시아적 시각에서의 문화 비판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것은 곧 한 교수가 독일의 지성계에 큰 파장을 일으킨 최초의 동양인 철학자임을 의미한다. 고국에서 공학을 전공한 뒤 독일에서 철학 공부를 시작하여 독일의 권위 있는 출판사들에서 꾸준히 저서를 출간해왔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피로사회>를 통해 이제 독일에서 가장 주목받는 철학자로, 서양 철학의 언어를 구사하며 그 속에 동양적 메시지를 담아내는 새로운 종류의 문화비판가로 떠올랐다.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질병이 있다로 글을 시작하는 <피로사회>는 출간 즉시 철학서로서는 놀라울 정도로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키며 큰 화제가 되었다. 거의 모든 독일의 주요 신문과 방송 매체들이 이 책을 비중 있게 다루었고, 시대의 핵심적 문제를 날카롭게 파헤친 책으로서 격찬하였다.

한 교수는 이 책에서 현대사회의 패러다임 전환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자아와 타자 사이의 적대성 내지 부정성을 근간으로 하는 사회(냉전, 면역학, 규율사회)에서 그러한 부정성이 제거된 사회, 부정성 대신 긍정성이 지배하는 사회로의 변화가 20세기 후반 이후 일어났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이 새로운 사회를 성과사회, 그리고 이 사회 속에 살고 있는 인간을 성과주체라고 명명한다. 과거의 사회가 금지(“해서는 안 된다”)에 의해 이루어진 부정의 사회였다면, 성과사회는 할 수 있다는 것이 최상의 가치가 된 긍정의 사회이다.

이 사회에서는 성공하라는 것이 남아 있는 유일한 규율이며, 성공을 위해서 가장 강조되는 것이 바로 긍정의 정신이다(“Yes, we can!”). 그러나 부정성에 의해 제약받지 않는 긍정성은 긍정성의 과잉으로 귀결되며 타자의 위협이나 억압과는 다른 의미에서 자아를 짓누른다.

오직 자신의 능력과 성과를 통해서 주체로서의 존재감을 확인하려는 자아는 피로해지고, 스스로 설정한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좌절감은 우울증을 낳는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를 한병철은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규율사회의 부정성은 광인과 범죄자를 낳는다. 반면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낸다.”

아울러 한 교수는 현대인은 이질성과 타자성으로 서로를 적으로 간주하며, 이러한 패러다임은 냉전의 종식이후 지속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아울러 아무런 적대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은 타자로, 아무런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 타자도 이질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제거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이질성의 반대급부로 긍정의 과잉이 나타나고 있음도 지적하고 있다. 나와 같거나 비슷하면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주저 없이 긍정하는 것도 커다란 문제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이런 현상이 긍정의 대량화로 나타나게 되는 일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피로사회>에서 성과사회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진화가 낳은 결과로 해석된다. 더 큰 성과를 올려서 더 큰 성공을 거두고자 하는 개개인의 욕망을 부추김으로써 자본주의는 전체적인 생산성을 극대화해간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착취는 이렇게 해서 자발적인 착취의 양상을 띤다.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그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이다.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의 노동수용소를 짊어지고 있다. 범람하는 성공학 도서들이 당신은 바로 당신 자신의 경영자입니다라고 말할 때, 한병철은 그것을 당신은 바로 당신 자신의 착취자입니다라고 읽는다.

한병철은 성과사회의 과잉활동, 과잉자극에 맞서 사색적 삶, 영감을 주는 무위와 심심함, 휴식의 가치를 역설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피로의 개념도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된다. 성과사회에서 피로란 할 수 있는 능력의 감소이고, 그저 극복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하지만 무위의 가치에서 출발하는 한병철은 피로가 가진 또 다른 측면을 본다. 피로는 과잉활동의 욕망을 억제하며, 긍정적 정신으로 충만한 자아의 성과주의적 집착을 완화한다. 피로한 자아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 자신을 채찍질하는 유아론적 세계에서 벗어나 타자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다.

한병철은 모든 권위를 타파하고 가장 완전한 개인의 자유를 실현한 서구 사회, 부정성이 거의 완전히 제거된 듯한 긍정성의 사회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의문, 다시 말해 왜 우리는 여전히 진정 자유롭지 못한가?” “왜 우리는 행복하지 못한가?”라는 의문에 대해 명석한 답을 제시해준다.

현실에서 우울증, 경계성성격장애, 소진증후군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은 마치 나치 강제수용소의 무젤만(영양실조로 피골이 상접한 수감자)과 유사한 증상을 보이고 있다. 극심한 우울증 환자와 마찬가지로 완전한 무감각 상태에 빠져 심지어 육체적인 추위와 감독관의 명령조차 분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수용소의 무젤만과는 달리 영양 상태가 좋고 몸에 지방이 과다한 경우에도 드물지 않게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피로사회, 우울사회의 현상인 것이다.

그런 저런 이유들이 바로 유럽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성공적인 독일에서 이 책이 그토록 큰 영향력을 발휘한 이유일 것이다. 한병철의 <피로사회>에서 묘사되는 성과사회의 모습은 상당 부분 한국 사회의 현실과도 일치한다.

이 점은 긍정의 힘을 통한 성공을 설교하는 처세 관련 책들이 한국의 도서 시장에서 얼마나 많이 팔리고 있는지를 보더라도 확인된다. 한국인이 바라는 이상적 사회의 모습은 아마도 능력(업적)과 성공의 일치일 것이다.

존재하려면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명제가 모든 개개인의 마음속에 내면화된 지상 과제가 될 때 사회는 한병철의 말대로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양산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피로사회에 대한 해결책으로 한 교수는 사색적 삶은 보는 법에 대한 특별한 교육을 전제한다. 니체는 우상의 황혼에서 교육자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세 가지 과업을 거론한다. 이에 따르면 인간은 보는 것을 배워야하고, 생각하는 것을 배워야 하며, 말하고 쓰는 것을 배워야 한다.

이러한 배움의 목표는 니체에 따르면 고상한 문화이다. 따라서 한 교수도 건전한 정신을 위하여 바르게 보고 생각하고 말하고 쓰는 교육의 필요성을 다시금 일깨우고 있다. 특히 보는 법은 정신성을 갖추기 위한 최초의 예비 교육이라고 말하고 있다.

<피로사회>의 저자 한병철은 고려대학교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한 뒤 독일로 건너가 철학, 독일 문학, 가톨릭 신학을 공부했다. 1994년 하이데거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2000년에는 스위스 바젤 대학에서 데리다에 관한 논문으로 교수 자격을 취득했다. 독일과 스위스의 여러 대학에서 강의했으며, 독일 카를스루에 조형예술대학 교수를 거쳐 베를린 예술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피로사회>(2010)를 통해 독일에서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며 가장 주목받는 문화비평가로 떠올랐으며, 한국에서는 2011권력이란 무엇인가를 통해 처음 소개되었다. 하이데거 입문』『죽음의 종류- 죽음에 대한 철학적 연구』『죽음과 타자성』『폭력의 위상학등 여러 권의 책을 썼다.

역자 김태환은 1967년 경기도 부천시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사법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 독어독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오스트리아 클라겐푸르트 대학에서 비교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1조선일보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하며 등단했으며, 계간 문학과 사회편집동인으로 활동했다.

덕성여자대학교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푸른 장미를 찾아서- 혼돈의 미학』 『문학의 질서- 현대 문학이론의 문제들』 『미로의 구조- 카프카 소설에서의 자아와 타자, Vom Aktantenmodell zur Semiotik der Leidenschaften. Eine Studie Zur narrativen Semiotik von A. J. Greimas(행위체 모델에서 정열의 기호학으로- 그레마스 서사 기호학에 대한 연구) 등이, 옮긴 책으로 페터 V. 지마의 모던/포스트모던등이 있다.

광역시 충청북도충청남도경상북도전라북도전라남도
서울타임뉴스인천타임뉴스대전타임뉴스대구타임뉴스광주타임뉴스울산타임뉴스부산타임뉴스제주타임뉴스세종타임뉴스태안타임뉴스안동타임뉴스의성타임뉴스군위타임뉴스영양타임뉴스울진타임뉴스문경타임뉴스상주타임뉴스예천타임뉴스영주타임뉴스청송타임뉴스경주타임뉴스영덕타임뉴스구미타임뉴스김천타임뉴스칠곡타임뉴스봉화타임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