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서부보훈지청, 우리고장 호국인물 알리기 ‘한상국 상사’
홍대인 | 기사입력 2017-06-29 11:08:38
[충남타임뉴스=홍대인 기자] 한상국 상사는 1975년 1월 31일 충남 보령시 웅천읍 무창포에서 출생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바다를 접하며 자란 한 상사는 어렸을 때부터 해군을 꿈꿨습니다. 한 상사의 모교인 광천제일고등학교의 광전체일장학회 이사장이자 한 상사의 선배인 김주호 이사장에 따르면, 한 상사는 고등학교 재학 시절부터 씩씩하고 교우관계가 원만했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해군을 꿈꿨던 한 상사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95년 해군 부사후 155기로 임관합니다. 한 상사는 임관 후 포항함, 충주함, 부산함 조타사로 근무했으며 2001년 12월 그의 마지막 근무지였던 참수리고속정 357호의 조타장으로 부임했습니다.

대한민국과 터키의 월드컵 3,4위전이 열렸던 2002년 6월 29일. 온 국민이 들떠있던 그날의 오전 9시 54분, 북한 경비정이 연평도 서쪽 7마일 해상에서 기습적으로 NLL을 침범합니다. 이에 대응하여 우리 해군 고속정 253편대(참수리 357호정·358호정)가 긴급 출동하여 대응 기동과 경고방송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북한 경비정은 남하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10시 25분, 북한 경비정은 우리 함정을 향해 기습 공격을 단행합니다. 이 공격에 참수리 357정의 조타실은 불길에 휩싸이게 되며 곧이어 우리 해군의 대응사격이 시작됩니다. 북한 경비정의 포격으로 참수리 357정의 정장 윤영하 소령이 현장에서 전사하게 되었습니다. 또 조타장 한상국 상사가 전사했습니다. 한상국 상사는 가슴의 관통상을 입고도 끝까지 키를 놓지 않아 참수리 357정을 지켜냈습니다.

북한의 기습공격에도 우리 장병들은 끝까지 용감히 싸웠습니다. 발칸사수였던 황도현 중사는 방아쇠를 잡은 채 전사했고 조천형 중사는 포탑내부가 불에 휩싸여 전사 할 때까지 방아쇠에 손을 떼지 않았습니다. M60 사수였던 서후원 중사는 몸을 가누기도 힘든 갑판에서 적에 응전사격을 하다 전사했고, 의무병 박동혁 병장은 5군데나 총상과 파편상을 입었음에도 전우들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중 피격을 당하여 오랜 투병생활 끝에 눈을 감았습니다.

이외에도 참수리 357정의 모든 장병들은 목숨을 바쳐 싸웠고 결국 서해를 지켜냈습니다. 교전은 25분 만에 끝이 났습니다. 우리 해군은 제2연평해전으로 인해 6명의 장병들을 잃었습니다. 윤영하 소령, 한상국 상사,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 6명이 전사하였으며, 19명의 장병들이 부상당했습니다. 북한의 서해 도발로 시작된 교전에서 우리 해군 장병들은 용감히 싸워 최후의 순간까지 군인정신과 전우애를 보여줬습니다. 참수리 357정 장병들의 희생으로 우리는 서해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전사하는 순간까지 키를 놓지 않았던 참수리 357정의 조타장 한상국 상사. 한상국 상사가 우리에게 돌아오기 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교전이 끝나고 41일만에 참수리 357정의 조타실에서 SSU 대원들에 의해 발견되었는데요. 발견될 당시 한상국 상사는 키를 잡고 있었다고 합니다.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357정을 지켰던 한상국 (당시)중사에게 지난 2015년 7월, 상사로 1계급 특진이 추서되었습니다. 또 한상국 상사를 비롯한 제2연평해전 전사자들은 최신예 함정의 이름으로 명명되었습니다. 해군은 지난 2009년 진수된 최첨단 기능의 유도탄함(PKG) 2번함과 3번함을 ‘한상국함’, ‘조천형함’으로 명명하였습니다. 지난해에는 한상국 상사의 모교인 광천제일고에서 제2연평해전 14주기를 맞아 한상국 상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한상국 상사 흉상을 건립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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