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텐트의 허와 실"
권홍미 | 기사입력 2017-02-02 18:22:59

염오봉 제35회 행정고시 합격 감사원 부감사관(전) 안양대학교 겸임교수(전)
[독자기고=염오봉]대선을 앞두고 '텐트'논쟁이 한창이다. 한 쪽에선 빅텐트가 국민의 뜻을 담은 대세라 하고 다른 쪽에선 기둥조차 못박고 날아갈 허상이라 공격한다. 왜 뜬금없이 텐트싸움인가?

우리나라 캠핑인구가 500만명을 넘어서 폭발적인 증가세다. 그래서 덩달아 텐트가 날개달린듯 팔린다. 왜 그럴까? 대다수 국민들의 삶은 나날이 팍팍해지는데 놀러가는 캠핑용 텐트의 인기는 역설적이다.

에릭프롬(Erick Fromm)은 인간이 자유의 결핍뿐만 아니라 자유의 과잉에서도 심리적 억압을 받고 결국 이로부터 탈출하려 한다고 설파했다. 헬조선의 척박한 삶에 지친 서민들이 한 두평 남짓한 비좁은 텐트 안으로 향하는 물결은 일종의 짧은 현실 도피이다. 보통사람들은 어디선가 보이지 않는 손에 조종되는듯한 세상의 불공정한 입김에 질식되어 그 작은, 그러나 음습한 왜곡이 스며들지 않는 공간 안에서 healing을 받는다. 그렇다. 텐트는 어머니의 자궁처럼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치유의 공간'이다.

이제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인 '빅텐트'도 바로 힐링의 관점에서 보아야한다. 3개월 넘게 광장을 달구는 시민의 함성은 손 안의 가녀린 촛불만큼이나 힐링을 갈구한다.

세상이 세금을 내는 자와 그 세금을 농단하고 탐닉하는 자로 이원화되고 흙수저는 영원히 나락으로 떨어져야하는 이 구조의 모순에 대한 광장의 몸부림이 우리 앞에 있다.

허나 정치인들은 광장에 보수와 진보의 형틀을 끼우려하고 그 알량한 정치적 성과물의 논공행상에 정신이 팔려있다. 누가 거리에서 탄핵서명운동하고 누가 탄핵을 주도했노라는 식의 싸움은 촛불광장의 세상에 대한 울분을 터트리게 한다.

탄핵이 국회의원 몇명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관점의 치졸함에 서글프다. 왜 대통령의 얼굴을 창녀의 누드와 결합시켜 대중을 현혹하는가?

보스에 대한 과잉충성의 마음 밑바닥도 흉물스럽지만 여자를 그저 정복과 유희의 고깃덩어리 정도로 바라보는 어느 사이비 정치인의 관념이 더욱 천박하다. 이렇게 광장의 포효는 왜곡되고 짓밟히고 있다.

그래서 시민들은 이 모순의 광기에서 도피하고 싶은 것이고 힐링받으려 갈구한다. 그러나 지금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빅텐트는 왠지 불안하다. 정치적 야욕을 가진 명망가들의 이합집산이 빅텐트라면 그 누구의 말처럼 기둥도 못박고 날아갈 것이다.

빅텐트는 정치적 명망가의 힘이 아니라 민심의 물결에 의해 떠올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불공정으로 점철된 이 사회구조를 바꾸는 증명을 제시해야한다.

이 시대는 불세출의 영웅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고개숙인 젊은이의 어깨를 어루만지고 광장의 소시민과 바닥에 앉아 눈높이가 같은 언어로 호흡하는 옆집 아저씨와 같은 정치꾼 아닌 정치인을 갈망한다.

그래서 일장춘몽 같은 반기문의 실패도 국민들 눈에는 서글프다. UN사무총장이라는 엄청난 타이틀에 떠올랐던 그는 공항에서 '정치교체'라는 애매한 슬로건을 던진후 평생 갑질로 단맛을 탐닉하던 관료와 정치인들을 마치 조폭처럼 뒤에 대동하고 전국 순회공연을 다녔다.


힘없는 국민이 그의 귀국에 기대했던 것은 너무도 왜곡된 헬조선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수술대 위에 올리는 것이리라. 벽돌공이 의사보다 더 많이 벌고 국회의원이 자전거 타고 출퇴근하는 유럽의 그런 나라들의 모습이 있지 않은가?

평생을 외국에서 외교관 생활하고 그 엄청난 UN사무총장 일을 했으면 달라야하지 않을까? 이당 저당 기우적 거리다 입당하면 지지율이 반등할 거라 생각했다면 찬란한 착각이다.

그러나 반기문의 실패를 환호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은 천박하다. 비록 진흙탕 싸움판의 하이에나가 되지 못한 그의 어눌함이 극단적 불공정에 가위눌린 서민들의 무력함과 맥락을 같이 하지 않는가?

그의 작은 그러나 아름다운 실패는 빅텐트라는 시대적 요구가 반기문이라는 훌륭한 타이틀 보유자 1인에 의해서도 보수와 진보의 프레임으로도 세워질수 없다는 것을 낱낱이 보여준다.

이 사회의 부패와 부조리에 항거하여 그 작은 촛불 하나 들고 무작정 길거리로 나서야했던 민초들의 마음으로 빅테트를 세워야한다. 과연 빅테트를 주장하는 정치인들은 부패와 불공정의 원흉인 그 달콤한 기득권을 내던질 의사와 용기는 있는가?

세계 1등국가 미국의 국회의원 수가 535명이다. 그런데 미국 국력의 10분의 1도 안되는 한국의 국회의원이 300명이나 되고 수백개의 특권을 누린다면 말이되는가?

지금 양극화에 내몰린 서민들은 어떤 도덕가나 메시아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판에서 누가 누구를 도덕적으로 단죄할 수 있는가? 그래서 대선후보로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않된다는 식의 도덕선생님 행세를 하는 정치인은 진부하다.

대선을 위해 자신의 탁월한 재능과 화려한 경력을 섯불리 내세우지 마시라. 일찌기 미국 링컨 대통령은 대중 앞에서 자신이 읽고 쓰고 셈하는 것조차 잘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링컨은 남북전쟁에서 남부에 대한 해안봉쇄를 단행하여 국내외에서 국제법 위반이라고 비판을 받았을 때, 그는 그저 시골변방의 변호사 출신이라 국제법을 잘 몰라 그리 된 것이라 해명했다.

이처럼 그저그런 스펙과 능력을 가진 범부에 지나지 않았던 링컨이 미국인의 국부로 자리잡았던 것은 그의 희생의 실천 때문이었다. 1880년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자유연방을 수호하기 위해 연방 이탈한 남부주들을 반역으로 단죄하면서 자신이 파멸로 내몰릴수도 있는 승리 가능성이 낮은 남북전쟁의 길로 들어선다.

그가 그저 여러 주들의 눈치를 보면서 줄타기 했다면 안락한 대통령 자리를 즐겼고 더욱이 남부주 출신 인물에 의한 보복성 암살이라는 끔찍한 죽음도 피했을 것이다. 그는 진정 지킬 가치가 있는 대상을 지키기 위해 온몸을 던진, 그래서 그 큰 권력의 기득권을 포기한 진정한 보수주의자이다.

과연 우리 정치판에 링컨과 같은 보수주의자가 있는가? 이념을 떠나 그런 희생의 인간이 우리 정치판에 나타난다면 수백만명이 추위에 떨며 애태웠던 몸부림이 헛되지 않으리라.

이제라도 국민들이 촛불 들어 만들어낸 이 변혁의 흐름을 지켜내는 개혁적 보수가 탄생하길 기원한다.

반기문이든 손학규이든 정운찬이든 이런 무소속의 정치인이 특정 정당에 입당해 대선 경선을 하지 못하는 현실은 우리 정당구조의 후진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은 이분들에 대한 호객행위를 그만 접으시라. 왜 정치기반이 허약한 트럼프가 공화당의 후보가 될 수 있었는가? 미국 정당에는 소위 중앙당과 당대표가 없다.

그래서 보스 중심의 계파도 없다. 대선후보는 코커스(caucus)라고 불리는 전국 각 지역의 수많은 학교, 교회 등에서 당원들이 모여 치열한 논쟁을 거쳐 치고 올라가면서 결정된다. 당원을 동원하거나 권력자들이 줄세워서 농단하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하다.

이제라도 우리 정당들도 선출직 후보의 결정권을 완전히 당원들에게 내려놓아야 한다. 국민의당의 지지율 하락도 바로 이런 새정치의 가치를 외면했고 훌륭한 정치인 1명의 주변에 두꺼운 인의 장벽을 세운 데서 촉발된 것이다.

만장일치의 획일성이 난무하고 아프리카 추장을 옹립하듯 후보를 세우려는 이 코미디 같은 모습에 공포를 느낀다. 마치 숙주와 바이러스처럼 긴밀한 공생의 끈끈함이 엿보인다.

이제 다수의 국민은 문재인 패권주의에 맞설 빅텐트를 기대한다. 선민주의에 젖어 귀족화된 문빠의 집권을 막아내야 한다. 현재로선 빅텐트만이 그 길이다. 그러나 이것이 소수 정치적 명망가의 권력 나누어 식사하기 용도라면 접어버리는게 좋다.

정치인들 스스로 국회의원 수를 절반으로 줄이고 지하철 타고 출퇴근하는 모습을 보이시라.

먼 미래산업의 청사진보다는 당장 4대보험료와 학자금 상환에 허덕이고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거리로 내몰리는 수만명 노동자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라. 그래야 서민의 마음이 물결처럼 흘러들어 빅텐트가 뜬다.

아니하면 5년전에 그랬듯이 국민들이 체념에 빠져 문빠가 불로소득을 얻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정치인들이 엄청난 상권을 가진 명당 점포로 여기는 정당도 국민들 눈엔 그저 패권주의의 독버섯이 자라나는 한물간 물건일뿐이다.

정당의 틀을 깨고 광야로 나아가라. 그 광야에서 오직 국민의 함성으로 선택받고 누림이 아닌 희생의 길로 나아가라. 어차피 지금 시대의 요구는 빅텐트이다. 그러나 그 빅테트가 환상으로 끝날지 아니면 역사의 큰 진전이 될지는 우리들이 얼마나 버림의 정치를 하는가에 달려있다. 이것이 실패하면 그 짐은 고스란히 서민들의 어깨를 짓누를 것이다..

염오봉

35회 행정고시 합격

감사원 부감사관()

안양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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