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 사망 강릉에서 '급발진 의심 사고' 책임 다툼 민사 소송 오늘 첫 재판
조형태 | 기사입력 2023-05-23 08:20:56


지난해 12월 사고 당시 모습 [강릉소방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지난해 12월 사고 당시 모습 [강릉소방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강릉타임뉴스] 조현태 기자 = 지난해 12월 강릉에서 발생한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의 책임 소재를 둘러싼 민사소송의 첫 재판이 사고 발생 5개월여만에 열린다.

춘천지법 강릉지원 민사2부는 23일 차량 운전자와 그 가족들이 제조사를 상대로 낸 약 7억6천만원 규모 손해배상 청구 사건 첫 변론기일을 진행한다.

원고 측은 "이번 사고는 자동차의 결함으로 발생한 급발진 사고였다"며 지난 1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자율주행 레벨2 차량인 이 자동차가 주 컴퓨터 전자제어장치(ECU) 소프트웨어의 결함, 가속 제압 장치(ASS)를 채택하지 않은 설계 결함, 자동 긴급 제동장치(AEB)가 작동하지 않은 결함, 충돌을 견디는 능력이 결여된 지붕(루프)을 장착한 설계 결함이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운전자가 급발진하는 중에도 최소 2차례 충돌회피 운전을 한 것은 페달 오조작 같은 운전자 과실이 아니라 자동차를 통제하며 운전했음을 입증한다고 강조했다.

'웽'하는 굉음과 흰 액체의 분출 등도 차량 결함을 의심하게 하는 점으로 지목했다.

또 이번 사고로 운전자의 12살 손자가 사망했기 때문에 중대재해처벌법상의 중대시민재해에 해당, 징벌적 손해배상책임도 청구 내용에 포함했다.

원고 측은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재판부에 사고기록장치(EDR) 감정을 신청했다.

사고 5초 전 차량의 속도가 110㎞인 상태에서 분당 회전수(RPM)가 5천500까지 올랐으나 '속도가 거의 증가하지 않은' 사실과 '가속 페달을 밟았다'는 국과수의 EDR 검사 결과가 모순되는 점을 통해 EDR의 신뢰성 상실을 증명하기 위해서다.

또 정상적인 급가속 시 엔진 소리와 이번 사고에서의 엔진 소리 간 음향 특성이 다른 점 등을 밝히고자 음향분석 감정도 신청했다.

지난해 12월 6일 강릉시 홍제동에서 60대 A씨가 손자를 태우고 운전한 스포츠유틸리티차(SUV)의 급발진 의심 사고가 발생해 12살 손자가 숨졌다.

이 사고로 A씨가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 혐의로 입건돼 지난 3월 경찰조사를 받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차량 급발진 사고와 관련해 피해자의 입증 책임을 완화할 필요가 있는지 살펴보고자 제조물 책임법 운용 실태조사에 관한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이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2년 7월 제조물 책임법 시행 이후 2019년 5월까지 1심 판결이 나온 급발진 의심 소송 28건 가운데 자동차 제조사의 책임이 일부라도 인정된 사례는 시프트 록 장치 미설치를 설계상 결함으로 본 2002년 12월 판결이 유일하다.

이마저도 대법원에서는 자동차 설계상 결함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쪽으로 판결이 뒤집혔다. 국내에서 차량 급발진에 대한 제조사의 책임이 인정된 사례가 전혀 없는 것이다.

같은 당 허영(춘천·철원·화천·양구 갑) 의원이 한국교통안전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살펴봐도 지난 13년간 급발진 의심 사고가 766건 발생했으나 급발진으로 인정된 사례는 하나도 없었다.

허 의원은 이달 11일 급발진 사고의 제조사 입증 책임을 강화하는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을 대표로 발의했다.

한편 A씨 가족이 지난 2월 국회 국민동의 청원에 올린 '급발진 의심 사고 발생 시 결함 원인 입증 책임 전환 청원' 글에 5만 명이 동의함에 따라 곧 관련법 개정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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