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임청각에서 독립운동의 정신을 배우다
김수종 작가 안동여행기, 5
김수종 | 기사입력 2018-06-09 12:2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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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타임뉴스=김수종] 원이 엄마의 편지 등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월영교를 둘러보고는 나오는 길에 석주 이상룡 선생이 살았던 임청각(臨淸閣)’으로 갔다. 임청각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살림집 중 가장 오래된 집이다. 조선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원의 여섯째 아들인 영산현감 이증(李增)이 이곳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여기에 터를 잡았다.

이후 이증의 셋째 아들로 중종 때 형조좌랑을 지낸 이명이 지은 별당형 정자이며, 안채는 용()자가 옆으로 누운 형으로 되어 있고, 별당인 군자정은자 형으로 되어 있는 집이다. 영남산 기슭의 비탈진 경사면을 이용하여 계단식으로 기단을 쌓아 지어진 전통한옥이다. 이 집은 안채, 중채, 사랑채, 사당, 행랑채, 별채는 물론 아담한 별당인 군자정과 정원까지 조성된 전형적인 상류주택이다.

임청각이라는 당호는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구절에서 따온 것으로 구절 중 동쪽 언덕에 올라 길게 휘파람 불고, 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짓기도 하노라라는 싯구에서 ()()를 취한 것이다. 임청각은 임시정부 초대국무령을 지내고,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무장독립투쟁의 토대를 마련하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한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이다. 선생은 누구보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경제적인 풍요로움과 종손으로서의 권위를 보장받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선생은 현실에 안주하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고난의 길을 자처하였으며,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전답은 물론이고 경술국치 이듬해인 1911년 재산을 처분해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친 행동하는 지성인이었다. 또한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맡아 독립운동계 분파 통합을 위해 노력하기도 하였다.

선생을 비롯하여, 아들, 손자 등 독립운동가 9명을 배출하는 등 3대에 걸쳐서 독립운동을 한 독립운동의 산실이다. 망명 직전에는 공자와 맹자는 시렁 위에 얹어두고 나라를 되찾은 뒤에 읽어도 늦지 않다며 독립운동에 매진할 것을 다짐했다. 또한 망명 직전 임청각에 있는 사당으로 올라가 신주와 조상 위패를 땅에 묻고 나라가 독립되기 전에는 절대 귀국하지 않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만주 망명길에 오른 2년 뒤인 1913년에는 아들 이준형에게 조선으로 들어가 임청각을 처분하라고 하였으며, 그 후 국내로 들어온 아들 이준형이 임청각을 팔겠다고 하자, 문중에서 이를 말리면서 독립운동 자금 500원을 만들어 주기도 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불령선인이 다수 출생한 집이라 하여 중앙선 철로 부설 때 50여 칸의 행랑채와 부속 건물이 철거당했다.

석주 선생을 생각하며 내부를 둘러보았다. 요즘은 한옥체험을 위해 숙박도 하고 있다고 하니, 언제 한 번 가족들과 함께 이곳에서 하룻밤을 자면서 독립운동과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에 대한 생각과 행동을 배우기는 기회를 가지고 싶어지는 곳이다.

이어 임청각에서 동쪽으로 100m쯤 지점에 있는 법흥사지 7층 전탑(法興寺址 七層 塼塔, 국보 제16)을 보러 간다. 사실 전탑은 안동을 여행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가 될 수 있다. 전탑은 벽돌을 쌓아 올린 탑으로 쉽게 볼 수 있는 석탑과 달리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것은 전국에 5기뿐이다. 그 가운데 3기가 안동에 남아있다.

법흥사지 7층 전탑은 국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전탑이다. 높이 16.8m, 기단 폭 7.75m이며, 단층 기단에 7층의 탑신을 차츰 크기를 줄여가며 쌓아 올렸다. 8세기 통일신라시대에 처음 건립됐다는 법흥사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나, 탑 이외의 유물은 남아 있지 않다. 멋진 탑이다.

놀랍고 대단하고 큰 전탑이라,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장대하다. 현재 이 터 옆에는 고성이씨 탑동파 종택(固城李氏 塔洞派 宗宅)’이 있다. 국가민속문화재 제185호인 이집은 1700년대에 초창되었으며, 안채·사랑채·북정 등이 자연환경과 잘 어울려 조성된 양반사대부 주택이다.

이준식이 안채를 건립하고 이어 사랑채를 건축하던 중에 죽자, 그의 손자 이원미가 완성하였고 대청도 건축하였다. 대청의 북쪽에 거리를 두고 배치되어 있는 북정(北亭)은 이종주가 1775(영조 51)에 건립하였다. 1824(순조 24)에 대수리를 하였고, 1991년에는 안채의 정침을 고쳐지었다.

영남산의 동쪽 기슭에 작은 계류를 끼고 있는 넓은 대지에 위치하고 있다. 뒤꼍의 숲이 우거진 야산과 북정 앞을 흐르는 계류 등의 자연환경을 잘 살려서 주택을 배치했다. 또한, 연못과 화단 등을 곁들여 조화를 도모함으로써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한적한 산간저택의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이 집은 조선 중기의 주택으로 주변의 자연환경과 건물을 교묘하게 조화시키면서 사대부저택의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독특한 구조 및 수법과 전통양식이 보존되어 있는 유구로 전통주택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것으로 12일의 짧은 안동여행을 마친다. 시티투어버스를 타고 주마간산으로 둘러보았지만, 안동찜닭이 좋았고, 안동김씨 태장재사에서 숙박도 아침식사도 나름 운치가 있었다. 그리고 봉정사, 임청각, 법흥사지 7층 전탑이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은 행복하고 즐거운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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