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행수 영화감독 구법(求法) 장편소설공유(空有) 출간...수익금 전액 영화제작비로
편집부 | 기사입력 2018-04-07 12:01:15

사진제공=영화감독 김행수
[서울타임뉴스=김정욱] 도서출판 말벗 박관식 이사는 김행수 영화감독으로 부터 소설 공유를 쓴 이유를 전해 듣고, 출간을 약속하며 수익금 전액 영화제작비로 내 놓기로 했다.

김행수 감독은 처음부터 소설을 쓰지 않았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 소설을 썼다고 했다.

10여 년 동안 같은 작품의 시나리오를 손에 들고 다녔지만 불교 소재의 영화에 투자할 투자자를 만나지 못하면서도 영화를 포기 하지 않았다.

바닷물이 말라도 영화를 만들겠다는 김행수 감독의 열정 앞에 박관식 이사는 발을 벗고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서울예술대학 선배이기도 하지만, 한 번 세운 뜻이 옳다고 생각하면, 굽힌 적이 없는 김행수 감독의 성품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가 만들어 질 수 있도록 얼마의 수익금이라도 도울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배우 전무송의 추천사]

영화제작과 동시 출간되는 『공유(空有)』는 산중 선사 묵계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인간 구원의 메시지와 묵계스님의 상좌 묘진(妙眞)과법공(法空)의 입장에서 전하는, 수행자이기 전에 인간이 진실로 지녀야 할 삶의 가치가 무엇이며, 진리(眞理)에 이르기까지 감당해야 할뼈저린 고뇌가 원작자인 영화감독 김행수의 의식으로 분해 용해(溶解)되어, 관객과 독자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오리라 생각한다.

인간이 세상에 와서 제 아무리 호사롭게 살았다 하지만, 때가 되면이 생(生) 끝이라는 죽음은 피해 갈 수 없는 필연을 겪게 된다.

진정한 의미의 자유(自由)란 무엇인가?

진정한 자유 없이 인간이 행복할 수 있는가?

작품 『공유(空有)』에서 진정한 자유의 정의는 생사(生死)를 넘는 것이라 한다.

진정한 자유란? 태어남과 죽음에서 벗어날 때만 진정한 자유인(自由人)이 되는 것이라 한다.

인간은 고통스럽지 않아야 한다. 행복해야 한다.

우리는 늘 행복을 구하면서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다.

재물을 모으는 것보다, 명예를 얻는 것보다, 나를 드러내는 일보다

시급한 것은, 대자유인 (大自由人)이 되는 것을 먼저 마치는 것이, 진실(眞實)로 행복한 생(生)이라 한다.

특히나 산중 묵계스님이 적멸(寂滅)에 들면서 자신의 육신(肉身)을 물고기에게 주라는 유언은, 많은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아있을 것 같다.

행복해야 할 인간의 삶은 고통이다. 삶의 고뇌를 진 수많은 독자들이 공유(空有)를 읽고 진정한 대자유(大自由)를 찾았으면 좋겠다.

『공유』 출판기념회

장소: 출판문회회관 4층 강당

일시: 4월 7일(土) 오후 3시

교통: 3호선 안국역 1번 출구에서 300m(경복궁 옆)

주차: 회관 건너편 경복궁 지하 주차장

사회: 이현정(불교방송 창립 아나운서)

영상: ‘진공묘유’ 영상 법문 / 의정 스님(상원사 용문선원장, 선원수좌선문화복지회 대표)

공연: 축원무 / 박상희(한국국제예술원 무용학과 교수)

가사창 / 이강근(가객 무향)

축사: 김두호 / (전)영화평론가협회 이사장, (현)인터뷰 365 발행인

지상학 / (전)시나리오작가협회 이사장, (현)영화인총연합회 이사장

[저자 약력]

영화감독

서울예술대학 영화과 졸업

전) 한국영화감독협회 부이사장

전) 대종상영화제 조직위원

전) 춘사대상영화제 심사위원

현) 청소년 세상충돌공모전 조직위원장

현) 밀짚모자영화학교 교장

[차례]

들어가며 / 스님! 도가 무엇입니까? / 어린 상좌 / 인간은 부처가 될 수 없다 / 만행, 그 세상길 위에서 / 지 마음 챙겨야지, 왜 남의 마음속을 들락거리는가? / 중생은 무엇이고? 부처는 무엇이냐? / 일대사를 해결하기 전에는 죽어서 만나자 / 살고 싶으면 이 뭣고를 붙들어라! /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 어머니 자궁 속 이전의 나는? / 이제 내 늙은 몸뚱이는 버려야겠다 / 적멸에 들다 /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 / 眞 空 妙 有 / 마치며 / 작가 후기

[작가 후기]

소설 제목 「공유(空有)」는 ‘진공묘유(眞空妙有)’에서 뽑았다.

나는 아직도 진공묘유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면서 굳이 진공묘유를 내세웠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나라고 하는 근원적인 문제에 대해 오래 전부터 고민해 왔기 때문이다.

어깨 너머로 듣고 배운 것이 있다면, 공(空)은 유(有)를 만나야 공(空)의 실체를 알 수 있는 것이고, 유는 공이 있어야 비로소 유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공이 유고, 유가 공이라는 말과 다르면서도 다르지 않다.

또한 진공은 무극으로 체(體)이며 공(空)이고, 묘유는 태극으로 용(用)이며 색(色)이라는 것쯤으로 나는 이해하고 있다.

수행자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지점은 대자유인이다.

어떻게 하면 인간계에서 진정한 대자유인(大自由人)이 될 수 있는가?

어디에도 걸림 없이 사자에도 놀라지 않고 바람에도 걸리지 않는, 막힘없는 삶을 끝낼 수 있는가?

누구나 가고 싶었던 그 길을 공유를 통해 느끼고 싶었다. 남은 생(生)그 길에서 내리고 싶은 마음 또한 없다.

어디서나 이기적인 세상의 체질은 변하지 않고, 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사욕이 사람의 눈을 가리니, 아무리 둘러봐도 대의적 인간 구원의 손길은 들리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도 그 사악함은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성싶다.

다음 생(生)에도 똑같은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이지 않은가? 이생에서 결판을 짓고 끝을 내야 하지 않을까.

책 한 권, 영화 한 편이 사람이 살아가는 데 무슨 큰 도움이 되겠냐만,진리(眞理)를 구하는 일에 크고 작음이 있겠는가?

내가 감히 「공유」를 쓴 것은 단 한번뿐인 인간의 소중한 삶을 지 맘으로 살아야 하는지, 남의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많은 사람들과 공유 (共有)해 보고 싶어서이다.

인간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가. 그렇듯 소중한 삶을 끄달림에 뺏긴 채,남의 마음으로 허비해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한순간 한순간이 얼마나소중한 생(生)인데 남의 마음으로 허비해 버린다는 것인가?

진정한 행복은 죽음을 뛰어넘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큰 사건은 자신의 죽음이다.

그 앞에 그 어떤 명예도, 재물도, 사랑도 봄눈에 지나지 않는다. 불행하게도 나뿐만 아니라 대개의 사람들은 거기, 세상의 끄달림에

목숨이 다하고 온 곳도 갈 곳도 모른 채 떠난다.

남의 마음으로 살아서는 절대로 그것을 넘을 수 없다.

죽음 직전에 남의 마음으로 살았다는 사실을 알고, 지 맘을 찾으려 발버둥쳐 보지만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최소한 공유(空有)를 이해한다면 최소한 행복한 생이 되지 않을까 싶다.

불법의 근본은 진공묘유에 있으며. 진공묘유를 모르고 화엄법계연기(華嚴法界緣起)를 말할 수 있겠는가?

진공묘유를 떠나 무슨 불법(佛法)을 더 논할 것이며, 내 본래의 모습을 어디에서 찾는단 말인가?

“진공묘유가 무엇인가"

“지 맘을 보는 것이다."

“지 맘이 무엇인가"

“우주의 중심자리다."

“우주의 중심자리가 무엇인가"

나는 우주의 중심 자리가 부처의 자리라고 말한다.

아직은 이 말에 틀림을 찾지 못했다.

시간에 쫓겨 가며 밤낮으로 책을 만드느라 수고해 주신 말벗 출판사 직 원들에게 마음의 고마움을 보낸다.

끝으로 나의 생각과 다른 분들에게 누(累)가 되지 않기 바란다.

[본문 중에서]

찬기와 강처사는 웃통을 벗고 뛰어 나와 조실로 향하는 법공을 의아하게 바라봤다.

조실 방안으로 급히 들어온 법공은 지필묵을 가지고 나가다 말고 앉은뱅이책상 밑으로 눈길이 쏠렸다. 있어야 할 두꺼비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거짓말처럼 없어진 앉은뱅이책상 밑을 손으로 더듬어 보지만 무거운 침묵만 손에 잡혔다.

이상하게 생각한 법공은 온 방안을 휘둘러 살폈지만 어디에도 두꺼비는 보이지 않았다. 법공은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불화실로 향했다.

법공이 조실에서 벼루와 지필묵을 가지고 불화실로 가고 있을 때, 소리보살은 두터운 이불로 묘진을 덮어주고 있었다.

가쁜 숨을 내쉬며 들어온 법공은 지필묵과 화선지를 묘진 앞에 내려놓았다.

반개한 눈으로 콧등을 보며 앉았던 묘진이 이불 속에서 손을 빼 붓을 들었다. 검지가 잘린 손에 붓을 쥔 묘진은 화선지 위에 거침없이 일필휘지(一筆揮之)를 날린다.

“내가 나에게 속고 살아원효의 칼에 쓰러지니 글 없는 글 말없는 말 누각에 걸렸더라"

영화감독 김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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