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시한부 삶을 살다간 남자 이야기 <코끼리의 등>(도서출판 바움)을 읽다.
김수종 | 기사입력 2017-11-20 17:12:09

[경북타임뉴스=김수종] 코끼리는 죽음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자리를 떠난다.

유명 작사가인 아키모토 야스시(秋元康)’의 장편소설 <코끼리의 등>(도서출판 바움)은 지금까지 연애소설 위주로 출간된 이전 작품들과는 조금 다르다. 폐암 말기 선고를 받은 48세의 중년 남자가 남은 6개월의 삶을 보내면서 가장 아름답게 삶을 마무리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산케이신문에 연재될 당시부터 중년층을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큰 공감과 감동을 가져오며 큰 화제를 뿌렸다. <코끼리의 등>은 죽음이라는 심오한 테마를 리얼하게 파고들지만, 그 내용이 결코 어둡지만은 않다.

죽음이 꼭 두렵고 무서운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아내와 두 아이들과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후지야마 유키히로는 어느 날 폐암 말기로 6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는 선고를 받는다. 갑작스레 다가온 믿기지 않는 현실을 부정하며 몸부림쳤지만, 후지야마는 죽는 순간까지 인간답게 살기로 마음먹는다.

지금까지 만나왔던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바쁘다고 돌아보지 않았던 자신의 삶에 이별을 고하기 시작한 것이다. 첫 사랑, 절교했던 친구, 옛 동료들에게 자신이 암이라며 유서를 남기던 후지야마는 죽음의 문턱에 이르러서야 그동안 곁에서 변함없는 사랑을 주었던 아내에게 편지를 건네며 프러포즈를 한다.

6개월이라는 시간을 껴안고 죽음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디뎠던 후지야마는 그렇게 아내가 지켜보는 앞에서 숨을 거둔다. <코끼리의 등>은 고통스런 죽음과 가족의 고통이 수반되는 슬픈 이야기이지만, 죽음을 통해 진정한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일본에서 최고의 이야기꾼이라 불리는 <철도원>의 작가 아사다 지로는 이 작품에 대해 단순한 삶과 죽음의 드라마가 아니다. 고뇌와 참회, 해탈의 도정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이야기이다.”라고 평할 만큼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코끼리는 죽음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자리를 떠난다. 자기가 죽어가는 모습을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고 홀로 외롭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고통을 전이하고 싶지 않은 배려심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코끼리의 마지막 모습은 너무나도 쓸쓸하다.

하지만 이는 코끼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도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에게 고통을 넘기지 않기 위해 죽기 직전까지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식구들에게 짐이 되지 않고자 일부러 죽음을 택하기도 한다.

그런데 <코끼리의 등>은 진정한 사랑은 바로 모든 것을 함께하는 것이라는 진리를 가감없이 그대로 이야기하고 있다. ‘죽음이라는 테마이기에 작품 속 분위기는 밝다고는 할 수 없지만 결코 무섭지도, 어둡지도 않다. 오히려 살아오면서 무심하게 지나쳐왔던 소중한 것들을 돌아보게 만든다.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코끼리처럼 병명을 숨겨야겠다고 생각하던 주인공 후지야마 유키히로도 점차 사랑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죽음을 알리고 진정한 삶을 살기 시작한다. 학창시절의 첫사랑에게 그 시절의 감정을 전한다.

사소한 다툼으로 절교했던 친구와 화해를 하고, 몹쓸 짓을 해버렸던 옛 동료에게 사죄하고, 대학시절 무참하게 차버렸던 연인에게, 그리고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친딸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건넨다. 그들과 만나면서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끼는 유키히로는 결국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한다.

이제 더 이상 미련은 없다.”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한 그의 말은 그렇기에 더더욱 의미가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제를 살 수는 없다. 오늘을 살고, 내일을 준비할 뿐이다. 지나온 세월을 바꿀 수는 없지만, 앞으로의 삶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다. 어차피 한번밖에 살 수 없는 인생이라면 행복하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중견 부동산회사에서 이사대우로, 그리고 아내와 두 아이들과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안정적인 나날을 보내던 후지야마 유키히로. 그는 어느 날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건강 이야기를 나누던 중 최첨단 의료시설을 체험해야겠다는 생각에 불현듯 건강검진을 받는다.

하지만 그에게 안겨진 검진 결과는 폐암 말기라는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그에게 남겨진 여생은 겨우 6개월여. 믿기지 않는 현실을 부정하며 괴로워했지만, 침대에 묶인 채 고통스럽게 삶을 연장하고 싶지는 않았던 후지야마는 죽는 그 순간까지 인간답게 살기로 마음먹는다.

처음에는 자신의 병으로 인해 괴로워할 가족들을 떠올리며 비밀로 하려 하지만 장남 슌스케에게는 자신이 암이라는 사실을 고백하며 자신의 짐을 덜어놓는다. 그리고 또 젊은 애인 에쓰코에게도 약한 소리를 하지만 아내와 딸에게는 비밀로 한다.

후지야마는 자신에게 남겨진 시간 동안 지금까지 만나왔던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기로 결심한다. 그간 바쁘다고 돌아보지 않았던 자신의 삶을 자기 나름대로 의미를 가지고 이별을 고하기 시작한 것이다. 첫 사랑, 싸우고 만나지 못했던 친구, 옛 동료 등 자신이 암이라는 사실을 전하고 유서를 남긴다.

회사에서 쓰러진 것을 계기로 자신의 병을 아내가 알게 되고, 아내와 함께 점차 죽음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날이 야위어가며 죽음의 문턱에 가까이 가는 후지야마는 그동안 자신의 곁에서 사랑을 주었던 아내에게 러브레터를 건네주고 프러포즈를 한다.

다시 태어나도 나와 결혼해주겠습니까?” 죽을 때를 깨달으면 조용히 떠나는 코끼리와는 정반대로 후지야마 유키히로는 사랑하고 있는 가족에게 자신의 뒷모습을 보이며 죽음을 맞이한다.

소리도 없고 빛도 없는 세계에서 내 의식은 새로이 눈을 떴다. 육체와 동떨어진 정신의 세계, 이것이 죽는다는 것일까? 코끼리는 자신의 죽음을 알아차렸을 때, 무리를 떠나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간다고 한다. 자신의 죽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일까?

아니면 세상의 미련을 끊고 싶기 때문일까?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 고독의 소용돌이 속에서 혼자 모습을 감출 수는 없다. 고독의 소용돌이 속에서 혼자 모습을 감출 수는 없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배웅을 받고 싶다. 그 사람은 행복하게 살았다고 박수를 받고 싶다.

숨쉬기 힘들 정도로 심장이 빠르게 방망이질치고 호흡이 가빠졌다. 갑자기 찾아온 죽음의 공포로 인해 도저히 서 있을 수 없어 엉겁결에 문 옆의 손잡이를 잡았다. 나는 죽는 것일까? 왜 나만 반년밖에 살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너무 불공평하지 않은가? 마음 깊은 곳에서 누구에게도 따질 수 없는 분노가 솟구쳤다.

나는 유리창에 비친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렇게 차분하게 내 얼굴을 바라본 것이 얼마 만일까? 여드름이 덕지덕지 났던 중학생 시절 이후 처음이 아닐까? 남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거울이 아닌 사건을 통해서 자신의 얼굴을 보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큰 고독은 어느 누구도 내가 고독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 아닐까?

나는 인생을 되돌아보고 싶다. 내 인생이 이런 것이었다고 확실히 알고 싶다. 인간은 죽기 직전에 자신의 인생을 주마등처럼 되돌아본다고 한다. 아니, 주마등이 아니라 더 느긋하게 되돌아보자. 남은 6개월을 아낌없이 투자해서 내 인생에 관련된 사람을 만나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이별을 고하자.

유서는 편지가 아니라 대화라도 좋고, 눈빛이라도 좋고, 생각만이라도 좋다. 100명이 있으면 100가지 방법으로 유서를 전하자. 나는 커피를 들고 방으로 들어가서, 유서를 남기고 싶은 사람의 목록을 만들기 시작했다.

한밤중에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기침을 했다. 너무도 괴로워서 침대 위에 엎드려 있자, 새하얀 시트 위에 혈담이 떨어졌다. 나의 목숨은 확실히 줄어들고 있다. 나는 옆 침실에서 자고 있는 아내가 눈치 채지 못하게 수건을 물에 적셔 시트에 묻은 혈담을 닦아냈다.

세면장에서 등을 구부리고 피를 닦아내는 내 모습이 다른 사람의 눈에는 어떻게 비칠까? 갑작스레 한심한 생각이 들고,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리고 그 정도로 눈물을 흘리는 나 자신이 한심해서 다시 눈물을 흘렸다.

말로는 아내에게 고통을 나눠주고 싶지 않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침대에 누워 있자 허리 주위가 차가워졌다. 지금 물수건으로 닦아낸 부분의 물기가 잠옷에 스며든 것이리라.

소설 <코끼리의 등>의 저자 아키모토 야스시(秋元康)195652일에 도쿄에서 태어났다. 주오대학 부속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1973년 겨울, 17살 때부터 방송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주오(中央)대학교 문학부에 진학했지만 일 때문에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것에 회의를 느끼고 중퇴했다. 1981Alfee 악곡의 흐르는 비B면의 곡을 작사하고, 사카자키 고스케와 다카미자와 도시히코가 작곡한 말로 할 수 없는 날씨의 작사가로서 데뷔하게 된다.

이후 미소라 히바리의 강물의 흐름처럼을 필두로 다수의 히트곡을 만들어냈는데, 이를 계기로 작사가 아키모토 야스시로서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음악·텔레비전·영화 프로듀서, 극작가, 영화감독, 만화 원작자, 탤런트 등 다재다능한 능력으로 여러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2007년부터 교토조형예술대학부 학장 겸 예술학부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너는 그렇게 약하지 않아>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 <어떤 길을 선택하면 행복할까> <인생에는 좋아하는 일을 할 시간밖에 없어> <최후의 장소> <남자의 마음을 모르는 당신에게> <자신의 지도를 그리자> 등이 있다.

<코끼리의 등>을 번역한 이선희 선생은 번역 소감으로 떠나는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 된다. 시간이 얼마 없다는 이유로 자기 멋대로 행동하기도 하고, 이제 곧 헤어진다는 이유로 모든 잘못을 용서받으려고 한다. 보내는 사람 역시 누구나 이기적이 된다. 시간이 얼마 없다는 이유로 아픔을 혼자 떠안고, 이제 곧 헤어진다는 이유로 모든 잘못을 용서한다. 떠나는 사람을 위해서, 그리고 남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고 했다.

아울러 코끼리는 자신의 죽음을 알아차렸을 때, 무리를 떠나서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간다고 하다. 과연 인간은 아내에게, 남편에게, 자식에게, 친구에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않고 홀로 저 세상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라며 글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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