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동 키드의 너무 웃긴 소설 책 <도련님, 아프시면 수프라도 좀 드세요> 출간
암으로 세상을 떠난 기자, 드라마 작가였던 최철호의 유작
김수종 | 기사입력 2017-06-27 15:16:10

[서을타임뉴스=김수종] 지난 5월 중순에 발간된 소설 <도련님, 아프시면 수프라도 좀 드세요>는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에서 성장한 한 사내가 자기가 겪은 유년, 청소년 시절의 추억을 찹쌀 호떡 반죽처럼 솜씨 좋게 뒤섞은 짧은 연작 소설 40편을 엮은 책이다.

하늘()을 받들고() 있는동네인 관악구 봉천동은 이제는 사라진 이름이 됐고,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천하의 이바구꾼 최철호 작가도 더 이상 사람들과 놀지 못한 채 암으로 우리 곁을 떠났다. 1969년 봉천동에서 태어나 2015년 남양주에서 세상을 버리고 떠난 최 작가가 남기고 간 봉천동 이야기들이 어디까지 사실인지 이제는 확인할 길이 없다.

이 소설은 그저 친한 이웃이나 오랜만에 만난 동무들하고 수다를 떨듯 함께하는 것이 이야기가 된 재미난 내용이다. 최 작가는 우리는 늘 조금씩 문제아였다!”라고 말하면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말하고 있다. 봉천동이라고 하는 변두리 삶들에게 건네는 진하고 알싸한 라면 수프 한 그릇에 담긴 너무나 웃기는 글들이 맛깔나게 숨어 있는 소설이다.

1969년생인 최철호 등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는 변두리 삶들이 펼치는 리얼 7080 버라이어티이다. 다들 가난하기 때문에 아무도 가난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손수건 가슴에 달고 초등학교 입학식을 치르고, 연탄재 던지며 골목길 야구를 했다.

온 동네 아이들이 모여 문 달린 흑백텔레비전으로 박치기 왕 김일과 서부소년 차돌이를 보고, 양은 도시락을 조개탄 난로에 데워 먹고, 10장짜리 회수권을 11장으로 늘리는 마법을 부리는 시절이었다.

유신 왕국의 새마을을 건너 땡전 뉴스의 시대를 견디고 어느덧 성숙해진 실세가 돼 권력의 중심부에 자리한 ‘386’들의 어린 시절, 어쩌다 어른이 된 우리들의 황금시대에 대한 기억이다. <도련님, 아프시면 수프라도 좀 드세요> ‘1학년 2080에서 ‘88 꿈나무 학번까지 어느 봉천동 키드의 생애를 대부분 담았다.

관악구 봉천동 산42번지 육군 상사 최 상사네는 직업군인 아버지와 전업주부 어머니, 누나 둘, 형 하나, 말썽쟁이 철호까지 여섯 식구다. 철호는 호떡 장사하는 건강이 좋지 않은 홀어머니하고 누나 둘과 형과 사는 정민이, 폐병 앓는 아버지하고 사는 두 살 많은 기성이랑 단짝이다.

셋은 봉천동 산동네 골목과 비행기산을 넘나들며 질풍노도의 시절을 보낸 평균적인 봉천동 키드다. <도련님, 아프시면 수프라도 좀 드세요>는 한 학년 20반에 한 반 80명이 다니던 콩나물 교실을 뚫고 잡초처럼 자라나 ‘88 꿈나무 학번으로 우뚝 서는 철호들의 오롯한 성장기다.

<도련님, 아프시면 수프라도 좀 드세요>지금의 나속에 깃든 ‘69년생 철호들을 찾아가는, 소설로 읽는 참여 관찰기이기도 하다. 짧게 이어지는 이야기를 따라가며 두텁게 차곡차곡 쌓아올린 사실들을 체크하다 보면 숨 가쁜 일상을 살아내느라 잊고 있던 추억을 소환하고 뒤엉킨 기억을 심문하는 나를 만난다.

사월 초파일에는 절에 가고 부활절과 크리스마스에 교회 가는 버릇은 군대 가서 슬그머니 되살아나고, 50일 치 방학 일기 하룻밤에 뚝딱 끝내던 버릇은 월화수목금금금 야근을 견뎌내는 노하우로 자리매김한다. 물론 이때의 경험으로 철호는 기자가 되었다고 방송작가, 소설가로 입봉했다.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성에 눈뜬 비디오 체험은 야동의 품격을 논하는 심미안의 뿌리가 되고, 온갖 불량 식품 사 먹고 전자오락실 드나드느라 엄마 호주머니 뒤지던 나는 배우자 몰래 비자금을 조성하고 있다.

10장짜리 회수권 뻥튀기하던 정교한 가위질 솜씨는 아이들이 열광하는 종이인형 오리기 달인에 등극하는 밑바탕이다. 매타작 피하려 성적표 긁어내던 버릇은 위장 취업용 공문서 위조범의 예고편이 되었다.

다른 동네 패거리에게 다구리당하는 친구를 돕는 파릇파릇한 우정은 커다란 불의에 분노할 줄 아는 평범한 소시민의 정의감으로 승화한다. 스무 살 향해 달리기는 감기에 걸린 어린 시절 라면 수프처럼 진하고 알싸한 내 인생의 봄날이다.

1977년에 초등학교 2학년이던 철호들은 열심히 달렸다. 연탄재를 발로 차며 좁은 골목길을 달리고, 장마 끝나면 하얀 연기 내뿜는 소독차 꽁무니를 쫓아 시장통을 휘젓고 다녔다. 지각 매타작을 피하려 옆구리에 가방 끼고 담 넘어 운동장을 질주했다.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 암호문 같은 시험지 위를 헤매고, 뒤처지는 친구를 위로하며 깡소주에 새우깡 놓고 광란의 밤을 내달렸다. 뭐든 할 수 있을 듯한 스무 살을 향해 달리는 인생은 자전거 타고 언덕 넘기.

어떤 정점을 지나면 그때부터 브레이크 따위는 없다. 매운 라면 스프를 풀어 잘못 끓인 라면 수프처럼 진하고 알싸한 내 인생의 봄날이다. 우리들의 스무 살은 아랫동네 곳곳에 그렇게 또 다른 철호들을 만들었다.

이제 철호가 남긴 철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소주 한잔 찌끄리며낄낄거릴 시간이다. “그때 우리는 뭐하고 있었지?” 암으로 죽은 최 작가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그의 유작에 추천의 글을 남겼다.

먼저 나 같은 기성 작가에게, 최철호가 글로 맑은 경종을 울리는 듯하다. 글이 별거냐. 이런게 글이다. 싶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마지막까지 순수해라!”라고 말하는 노희경 드라마 작가.

철호는 한때 내가 일하던 잡지의 팀원이었다. 기획안은 좋았고, 결과는 늘 안 좋았다. 나중에 들은 애기가 있었다. 취재원을 만나고는, 그가 기사로 피해를 볼까봐 미안해서 못 썼다는 말도 있었다. 그는 봉천동 산동네 깡다구 없이, 여리고 착했다. 기다려, 철호야. , 가서 보자. 여기도 별거 없어.”라고 하는 박찬일 요리 연구가 겸 칼럼니스트.

유재하의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처럼, 기형도의 시집을 처음 읽었을 때처럼 아프다. 그가 여기 없다는 게 거짓말이었으면 싶다. 살아서 계속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박은영 드라마 작가.

내 친구 철호는 떠났지만 선한 눈빛과 따뜻한 가슴은 그가 써 내려간 글 속에 아름답고도 순순한 빛깔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독자들은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금세 아련한 추억의 바다로 빠지게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윤성식 KBS PD

소설의 저자인 최철호는 1969년 관악구 봉천동에서 태어났다. 2015년 경기도 남양주에서 세상을 떠났다. 관악초등학교, 봉천중학교, 영락고등학교를 다니며 봉천동 산동네 토박이로 살다가 1988년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들어가면서 남산 자락을 오르내렸다. 교지를 편집한다는 핑계를 대며 최루탄을 마시고 술을 들이켰다.

1995년에 대학을 졸업한 뒤, 월간지 사과나무, , 싸비와 일간지 스포츠 서울을 거치며 기자로 일했다. 드라마 작가라는 꿈을 품고 다닌 교육원을 3등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마쳤다.

민정수라는 필명으로 ‘KBS 드라마시티에 방영된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를 써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주는 ‘2007 올해의 좋은 드라마상을 받았다. 암으로 세상을 뜬 뒤에야, 어린이재단이 내던 월간지 사과나무에 실은 짧은 연재소설 내 인생의 봄날을 고쳐 묶은 첫 책<도련님, 아프시면 수프라도 좀 드세요>을 유고집으로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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