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육에 여유 없이 팍팍하게 살아가는 빈곤한 자의 미국노동현실, 그와 비슷한 헬조선
[서평] 근근이 먹고 사는 미국의 가난한 여성 이야기 <핸드 투 마우스>을 읽다.
김수종 | 기사입력 2017-05-25 10:57:59

[서울타임뉴스] 누구도 관심 갖지 않았던 가난한 여인이 미국사회에서 크게 주목받았다. 초라한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글과 책 <핸드 투 마우스>(도서출판 클) 때문이다. ‘Hand to mouth’ 우리말로 번역을 하자면 근근이 먹고 살다’ ‘입에 풀칠하기라는 의미다.

먹을 것이 손에 잡히면 바로 입으로만 간다는 뜻인 것이다. 그 만큼 영육에 여유가 없는 팍팍한 현실을 표현한 말이다. 부자나라 미국에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빈민 여성 이야기다.

핸드 투 마우스의 저자인 린다 티라도는 자주 들어가던 온라인 게시판에서 어째서 가난한 사람들은 자기 파괴적 행동을 하는 걸까요?’라는 질문을 보게 된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쓴 후 댓글을 달았다.

휴식이란 부자들이 누릴 수 있는 사치이다. 나는 학교에 가기 위해 오전 6시에 일어난다. 수업이 끝나면 일터에 가고, 일을 마치면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가, 남편을 데리러 간다. 그러나 나서 30분 안에 옷까지 갈아입고 두 번째 일터로 향해야 한다. 일터에서 돌아오면 대략 새벽 12시 반. 그 때부터 온라인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한 뒤 오전 3시에 잠자리에 든다. 매일 이렇지는 않다. 1주일 중 이틀은 쉰다. 그 틈에 나는 집을 청소하고 남편을 달래고 1시간 넘게 아이들을 돌보고 밀린 학교 공부를 한다. 그런 날에는 자정이면 잠자리에 들 수 있지만, 너무 빨리 자면 문제가 된다. 늦게 자는 생활습관이 무너져서 다른 날 버티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일터에서 집까지는 1시간을 운전해야 해서 그 시간대에 졸게 되면 큰일이다. 따라서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생각할 여유가 별로 없다. 단지 다음 일, 다음 일정으로 계속 움직일 뿐이다. 계획을 짠다는 것은, 내 계획에는 없다.”

그가 쓴 글을 사람들이 공유하기 시작했다. 이후 허핑턴 포스트〉 〈포브스〉 〈네이션등이 그 글을 실으면서 600만 명 넘는 사람들이 읽게 된다.

이 책은 미국 저임금 노동자가 가난한 자신의 삶을 생생하게 기록한 책이다. 그는 가난하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하고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지, 부자들이 바라보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 분노를 쏟아내는 동시에 유머로 풍자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장점은 본인의 이야기를 담은 당사자성에 있다. 그는 실제로 가난한 노동자로 그가 겪은 현실적인 일상과 도발적인 진실을 그려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이 왜 패스트푸드를 먹는지 말한다. “첫 임신을 했을 때 잠시 일주일 단위로 숙박비를 계산하는 단기주거용 모텔에서 살았다. 모텔에는 냉동실 없는 미니 냉장고와 전자레인지가 있었다. 나는 WIC(임산부를 포함한 저소득층 여성과 그 자녀에게 각종 음식을 제공해주는 미국의 복지제도) 프로그램에 등록돼 있었다. 나는 땅콩버터를 병째로 퍼먹었고 냉동 부리토를 사서 데워 먹었다. 2달러에 12개나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스레인지가 있었다 한들 소고기 부리토를 그렇게 싼 가격에 해 먹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고기를 먹어야 했다. 임신했으니까. 산전관리는 전혀 하지 못했어도 애를 배면 단백질과 철분을 섭취해야 한다는 것을 알 정도의 지성은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요리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도 말한다. “요리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작동하는 가스레인지와 냄비와 양념이 있어야 하고, 아무리 피곤해도 설거지는 꼭 해야 한다. 안 그러면 벌레가 끼니까. 하지만 많은 이들에게 이것은 완전히 새롭고 대단한 기술이다. 서글프지만 사실이 그렇다. 그리고 혹 요리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가족들이 배를 앓을 수도 있다. 중간계급이 되기 위해서 너무 열심히 애쓰는 짓 따위는 안 하는 게 좋다는 걸 우리는 배웠다. 결과가 좋은 경우는 결코 없으며 노력했는데 또 실패하는 것은 언제나 기분 나쁘니까. 그러니 노력하지 않는 게 차라리 나은 것이다. 입맛에 맞는, 저렴하고 보관이 쉬운 음식을 사는 게 더 타당하다. 정크푸드는 우리에게 허락된 쾌락이다. 왜 우리가 그 쾌락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인가. 즐거움이란 애초에 거의 없는 우리인데 말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요리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는 방식대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설명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왜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않는지, 어째서 지저분하게 살며, 건강은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지, 왜 문란하게 살고, 계획적으로 돈을 쓰지 못하는지 등을 밝힌다.

우리는 담배를 피운다. 도파민을 분비시키는 손쉽고 빠른 방법이니까. 우리는 정크푸드를 먹는다. 저렴한 데다 뇌의 쾌락중추에 불을 켜주니까. 그리고 우리는 마약을 한다. 좋은 기분을 느끼거나 무언가를 잊고 도피하는 데 효과적인 방법이니까. 가난한 사람들의 스트레스 해소법이 멋지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숙취도 극복하지 못한 주제에 설교해대는 소리를 들으면 정말로 짜증이 난다. 돈이 남아돌아서 술과 담배에 낭비할 수 있다면 그건 네 사정이지만 가난한 사람이 그런 일을 하는 건 죄악이며 부끄러운 짓이라는 논리다.”

그는 자신이 유독 험난하게 살아가는 경우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미국인의 1/3이 그와 마찬가지로 살고 있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계층 하락은 늪과 같아서 한 번 빠지면 완전히 휩쓸릴 때까지 선택권을 계속 제한한다.

그는 16살에 집을 떠나 대학에 진학한 이후 대학을 중퇴하고 직업을 구하고 병원비를 내며 일자리를 잃고 홍수에 가진 것 전부를 잃기도 하는 평범한 삶을 살아왔고 어느 순간 가난한 사람이 됐다.

빈곤이란, 우리 모두에게 다가올 잠재성을 품고 있다.” 이는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가난의 또 다른 측면이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가난한 사람들이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이유, 빈곤층들이 저축하거나 계획적으로 돈을 쓰지 못하는 이유 등을 말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계획적으로 살지 않는다는 비판에 대해 “3일 후면 사라질 돈인데 내일을 위해 오늘 당장 자신을 행복하게 해줄 것들을 포기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가?”를 반문한다.

결국 빈곤은 장기적인 일을 계획할 수 없게 하고 희망을 품지 않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스스로 내린 결정들과 심각한 불운이 겹쳐 바닥으로 미끄러진 사람이 최저임금으로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좌파 지식인까지도 그 자신이 가난하지 않다면 지금 가난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른다. 기껏 어릴 적 기억이거나, 우연히 길에서 마주치는 빈곤층의 겉모습만 본다.

그는 게으름, 건강, 피곤, 성생활, 출산 등이 가난한 이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가슴 수술을 할 돈이 없다는 이유로 해고된 스트리퍼 등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그는 말 한다. “열심히 일하는데도 가난한 것은 정말 끝내주게 괴롭다.”

아무도 변기를 닦을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변기를 청소해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면 어떻겠느냐고 되묻는다. 자신의 가난을 변호하는 데에 자본주의 자체를 비판하는 것으로 에둘러가지 않는다. 경험 위에 단단히 발 디딘 주장은 그 자체로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바텐더, 식당 종업원, 투표독려원 등 수많은 파트타임 일을 세 탕까지 뛰어본 적도 있지만 연 소득 2만 달러의 벽을 넘지 못한다. 수많은 경험을 통해 그가 일자리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기준은 단 하나. 내가 원할 때 상사에게 알리지 않고 화장실에 갈 수 있는가이다. 화장실행을 미리 고지해야 하는지 여부가 일터 분위기에 대해 많은 점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는 점장 자리까지 오르지만, 관리자보다 부하 직원 편에 선다. 직원들이 쓰레기통을 뒤져 유통기한이 지난 샐러드와 채소를 집에 가져간다는 사실을 알고, 못 쓰는 식재료를 쓰레기통 안이 아닌 옆에 두도록 한다.

상류층끼리 서로 뒤를 봐주듯, 하층계급도 그러면 안 되느냐고 항변한다. 뒤 봐주기라기 보단 지옥 같은 직장을 견뎌 내는 생존전략에 가깝다. 가난한 사람은 작은 불행에도 몇 배의 충격을 받는다.

순간의 실수로 차량이 견인되면, 자동차를 이용해 매일 두세 탕씩 일을 뛰는 이들은 실직을 당한다. 견인 비용 200달러를 못 낸 대가로, 차량은 물론 일자리까지 잃고 삶 전체가 흔들리는 것이다.

책은 빈곤에 관한 수많은 연구논문, 칼럼과는 다른 현실을 담아내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결책까지 제시하지는 않는다. 스스로 고백하듯, 그는 빈곤 문제 해결의 전문가는 아니다. 다만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어주고 공감해 달라는 것, 알바 종업원을 만나면 좀 더 배려해 달라는 소박한 당부가 전부다.

식당 종업원이 불친절한 이유는 대부분 화나서가 아니라 피곤하기 때문이라는 걸 알아 달라는 말이다. 아래로부터의 공감과 연대. 이미 그는 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미소 지으라는 말을 여성들이 왜 기분 나빠하는지 알지만, 바와 스트립 클럽에서 일한 경험을 통해 섹스도, 가짜 사랑도, 그 어떤 것도 상품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고 말한다. 그는 20대 중반 바에서 일할 때 20분마다 한 번씩 성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느냐 물었던 상사와 일했던 경험을 말하고 있다.

빈곤은 장기적인 일을 계획할 수 없게 하며, 희망을 품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냉혹한 빈곤은 뇌의 장기적 사고 기능을 중단시킨다. 나는 사람들이 당장에라도 투표소로 내달려 문을 부수고 들어가지 않는 이유도 이해한다. 그 사람은 자신의 한 표에 영향력이 있다는 믿을 만한 증거를 본적이 없는 것뿐이다. 우리 동네 학교들은 여전히 엉망이고, 도로는 덜 관리되며, 경찰은 덜 친절하다. 양적완화나 우대금리지표를 누가 관리하는지는 좆도 신경 쓰지 않는다. 돈이 없기 때문에 그런 사안들은 우리와 전혀 무관하다.”

왜 가난한 미국인들이 투표를 하지 않는지, 자신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공약을 내놓는 후보에게 투표하는지도 이야기하고 있어 어떻게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었는지도 유추해볼 수 있다.

몸에 생긴 상처만큼 돈을 버는 삶, 하루 종일 일하지만 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가난한 여성 노동자, 그의 날선 목소리가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렇다고 이 책이 푸념과 비관, 냉소, 패배주의로 일관하는 것은 아니다. 책 말미까지 유머감각을 유지한다. 부자들에게 띄우는 공개서한은 가난한 이들과 공존하는 모든 이들이 새길 만한 실천적 조언이다.

이 책에 실린 몇 개의 추천사는 감동적이다. 나는 잠입 취재로 체험한 것이지만, 린다 티라도는 진짜다. 바버라 에런라이크, <노동의 배신>. 수천만의 미국 저임금 노동자들에 대해 아주 솔직히 이야기하는 <핸드 투 마우스>는 유쾌한 어조로 우리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해준다. 로버트 라이시, 미국 전 노동부 장관. 이 나라가 별 문제없이 잘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이 읽어야 할, 매우 솔직하게 쓰인 책. 맷 타이비, <가난은 어떻게 죄가 되는가>

<핸드 투 마우스>저자인 린다 티라도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최근까지도 파트타임 일자리 두 개로 생계를 이어온 보통 미국인이다. 번역자인 김민수는 서울에서 나고 자라 한국과 미국에서 공부했다. 옮긴 책으로는 스탠리 엘린의 <특별 요리>, 라즈 채스트의 <우리 딴 얘기 좀 하면 안 돼?> 등이 있다.

서울타임뉴스=榴林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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